기도와 사랑으로 이화를 응원해 주신 후원자 분들의 아름다운 나눔 스토리 fnctId=bbs,fnctNo=61 58 건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얼굴은 달라도 이화를 향한 마음은 하나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이화소식 130호 인터뷰이 첨부파일 0 작성일 2022-06-17 조회 191 작은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큰 바다를 이루듯 이화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여 이화의 미래를 빛나게 합니다. 이주영 남촌재단 고문(영문 75졸)남촌장학금 등 2억 원 후원 이주영 남촌재단 고문(영문 75년졸)이 “공감과 나눔에 대한 평소 생각을 실천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후배들이 따뜻한 품성을 갖춘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히며 ‘남촌장학금’과 ‘이화 2030+ 발전기금’에 각 1억 원씩 총 2억 원을 전달했다. 이번 기부로 누적액이 10억 원을 돌파한 ‘남촌장학금’은 남촌재단에서 2008년부터 본교 가정형편이 어렵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 위한 장학금으로,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활발한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는 남촌재단의 이주영 고문은 ‘남촌장학금’에 더해 ‘이화 2030+ 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하며 학교 발전에 힘을 실었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감사드리는 것은 이화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화의 도약을 기원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기 바란다”는 기부 소감을 전했다 노정희 대법관(법학 86졸)법학전문대학원발전기금 1억 2천만 원 기부 노정희 대법관(법학 86졸)이 ‘법학전문대학원발전기금’에 1억 2천만 원을 기부했다.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과 ‘선배라면장학금’ 등에 후원을 이어와 총 기부액이 1억 6천만 원에 달한다. 노정희 대법관은 “동창으로서 학교의 발전상을 들으면 기쁘고 큰 힘이 된다”라고 말하며 “저는 이화에 큰 은혜를 입었다. 재학 시절 장학금 등 학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교수님들과 동기, 선·후배로부터 이화의 문화와 정신을 경험하고 배웠다. 내가 이화로부터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후배들에게 돌려줄 수 있어 기쁘다”라며 기부 소감을 전했다.노 대법관은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90년 춘천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해 2018년 여자대학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여성·아동 권익보호에 앞장서고 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거듭하여 법조인으로서 후배들의 귀한 롤 모델이 되고 있다. 故 이병림 교수(가정 55졸)이병림장학금 1억 원 기부 2021년 11월 작고한 故 이병림 소비자인간발달학 전공 교수(가정 55졸)가 ‘이병림장학금’ 1억 원을 이화에 남겼다. 고인은 1957년부터 41년간 본교에 재직하며 후진 양성과 본교 발전에 헌신을 하였다. 한국 아동학의 선구자인 이병림 교수는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국내 아동학의 학문적 정립에 큰 기여를 하였고, 학무과장, 사무처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두루 역임하며 본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이화 총동창회장으로 역사적인 이화 창립 100주년을 맞아 동창의 날 행사를 성대히 개최하는 등 이화에 오롯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이화는 故 이병림 교수가 보여준 이화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기억할 것이다. 이충선 한아장학재단 이사장(약학 56졸)EGPP한아장학재단장학금 5만 달러 후원 한아장학재단 이충선 이사장이 EGPP한아장학재단장학금에 5만 달러를 추가로 후원했다. 아프리카 선교 중 “이들 국가를 위해 지도자를 키우는 게 내 마지막 사명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충선 이사장은 의료봉사, 문화, 장학사업으로 다양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2022년 5월에는 키르키즈스탄 선교봉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유라시아 학생들의 학업, 취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2011년부터 본교의 개발도상국의 여성 인재를 전액 장학금으로 교육시켜 자국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EGPP, Ewha Global Partnership Program)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온 한아장학재단의 ‘EGPP 한아장학재단 장학금’ 후원액은 7억 7천여만 원에 달한다. 이충선 이사장은 “그 동안 EGPP를 통해 20여 명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어 현재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가슴 뿌듯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다”라는 기부 소감을 밝히며 “한국이 전쟁의 역경을 딛고 성공한 나라가 된 것처럼 장학생들도 이화에서 교육을 받고 모국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나라를 한국처럼 부흥시켜 주기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다. 김영기 조지워싱턴대학 명예교수(영문 63졸)AI연구 장려를 위해 5만 달러 기부 김영기 조지워싱턴대학 명예교수(영문 63졸)가 이화가 미래 핵심기술로 손꼽히는 인공지능(AI) 분야를 선도하여 인간 중심의 AI를 정립하겠다는 목표를 지지하기 위해 5만 달러를 기부했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30여 년 동안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현재 한국학연구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교수는 “인문학자로서 인간의 근본적인 연구와 응용 연구에서 여러 분야의 상호 관련성을 주목했다. 모교에서 추진하는 AI에 대한 새로운 강조에 박수를 보낸다”고 전하며 “향후 ‘AI 인문학 연구상’이 제정되어 우수한 업적을 이룬 분들에게 수여되기 바란다. 인문학 기반 연구자들이 앞으로 인간적인 인공지능을 만드는데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이 참여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낙찬 현재어학원 이사장 현재장학금 6천만 원 지원 본교 동창(김현재, 사학 20졸)인 딸의 이름으로 조성한 ‘현재장학금’을 후원해오고 있는 김낙찬 현재어학원 이사장이 6천만 원의 장학금을 추가로 기부했다. 장학금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기에 그 감사함을 돌려주고자 했다는 김 이사장은 “하나님께서 그 길 아래 능력을 주셔 스스로 약속한 기부를 지속해왔다. 그 연속선상에서 기독교 정신이 깃든 이화여자대학교에 기부를 다짐했다”며 “하나님과의 약속이기에 저에서 딸까지 이 약속은 계속 될 것이다”고 전했다. 장학생을 처음 2명에서 지속적으로 확대해 매 학기 7명에게 전액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 김 이사장의 기부액은 2억 1천만 원에 달하며, 2023년부터는 생활비 지원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김 이사장은 “‘느낌을 가지고 믿으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장학생들도 꿈을 갖고 진실 된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꿈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며 “장학생들의 미래에 선한 행동이 이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진심어린 당부를 남겼다. 채경령 너와락 복지센터 대표(경영 83졸)채경령통일인재장학금 5천만 원 후원 채경령 너와락 복지센터 대표(경영 83졸)가 ‘채경령통일인재장학금’에 5천만 원을 기부했다. 북한이탈주민 학생을 지원하는 이 장학금은 이번 기부로 누적액이 2억 1천여만 원에 도달했다.“물이 흘러간 자리에 다시 물이 채워지는 자연의 섭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채움의 원리이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듯이 우리 마음에 ‘욕심이라는 이끼’가 끼지 않도록 이웃에 하나님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고자 한다”는 채경령 대표는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성장하고자 복지센터를 더욱 확대하여 너와락나눔재단으로 키우는 준비를 하고 있다.채 대표는 “한반도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통일이 될 것이며, 북한이탈주민 학생들을 한국에 오게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고 믿는다. 통일에 대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고자 장학금을 조성했다”고 밝히며 “북한이탈주민 학생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이화에서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일꾼으로 남북 교류의 시대에 중요한 인재로 쓰임 받을 수 있기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다. 나눔은 감사한 선물이자 감사의 선물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노선숙 수학교육과 명예교수 첨부파일 0 작성일 2022-03-29 조회 432 수학교육과 노선숙 명예교수(수학 79졸)는 1995년부터 이화여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는 순간부터 2022년 2월 강단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까지 나눔과 헌신으로 이화와 이화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정년퇴임을 맞이하며 이화발전을 위해 1억 원 이상 기부한 고액기부자 클럽인 이화아너스클럽의 회원으로 위촉된 노선숙 교수는 시공간 막론하고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크고 작은 도움과 따뜻한 격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평소 생각을 전했다. 이러한 나눔과 헌신의 근원에 대한 질문에 노선숙 교수는 이화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로 답했다. 나눔은 감사한 선물저의 교육자로서의 커리어는 학부 1학년 시절 받았던 뜻밖의 장학금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어 석사과정 중 받은 T.A.장학금 수혜는 학문 탐구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1982년 퍼듀대학교 수학과 박사과정에 지원하고 받은 T.A.장학금 수혜 소식은 오랜 동안 대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교직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한 감사한 기회의 선물이었습니다. 감사의 선물, 나눔의 기쁨 감사함은 다시 감사의 선물로 선순환됩니다. 교육받는 기간에 경험하는 후원인 장학금 수혜는 학업에 열중할 동기를 부여해주고, 힘든 상황에도 도전할 용기를 주며, 끈기 있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보람과 기쁨을 경험케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7년간 교육받고 교육하며 지낸 대학에서의 커리어를 숙고해 보며 감사하게 받은 선물은 감사의 선물로 필요한 모두와 나누어야 한다는 교육자 본연의 임무를 떠올립니다. 학생 개인의 발전은 대학 발전에 우선하고 대학 발전은 사회 발전에 우선합니다. 사회는 대학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도록 지원할 책임이 있고, 대학은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화에서 교육받은 모든 학생들은 재학 시 받은 모든 교육적 경험과 수혜를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두와 나눌 교육적∙사회적 책무성을 품고 졸업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좋은 교육 받을 권리와 동시에 사회와 대학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할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이화에서 받은 모든 교육적 수혜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와 아낌없이 나누는 미래 사회의 책임 있는 리더들이 되기를 희망하고 기대합니다.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나눔의 기쁨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서순경 Rim Family Foundation 이사장(법학 57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2-03-21 조회 419 늘 배움을 놓지 않고 주변에도 배움을 권유한다는 Rim Family Foundation 서순경 이사장(법학 57졸)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주 한인들을 위한 활발한 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8년부터는 경제사정이 어려운 본교의 법학 전공 학생을 지원하며 차세대의 꿈과 미래를 응원할 뿐만 아니라 나눔의 기쁨이라는 소중한 가치도 함께 전달하고 있다. 법학대학에서 학사(1957)와 석사학위(1959)를 취득한 서순경 이사장은 외교관인 부군과 세계 각국을 다니다가 1982년 미국 LA에 정착했다. 낯선 땅에서 적지 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 성공적으로 일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적응할 새도 없이 임지를 계속 옮겨 다녀야 하는 생활과 넉넉하지 않은 외교관 월급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녹록치 않은 상황에도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장학 사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서순경 이사장은 2014년에 두 아들과 함께 Rim Family Foundation을 설립, 미주 한인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시작했고 폭 넓고 실효성 있는 후원을 하고자 가족의 도움을 받아 장학재단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기 소르망은 저서 ‘세상을 바꾸는 착한 돈’에서 ‘미국인의 기부 문화가 바로 미국을 강대국으로 이끄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미국인들은 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공교육을 바꾸고, 소외계층의 사람들에게 변화를 주는 등 사회 변혁을 이루어 왔다’고 주장했다. 서 이사장은 ‘세상을 바꾸는 착한 돈’을 인용하며 “재단을 설립하고 기부를 계속 할 수 있어 무한히 기쁩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바쁠 시기에 운영을 돕는 자녀들에게 고맙고 손자손녀들에게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물려주고 싶습니다”라며 나눔이 지니는 힘과 기쁨을 강조했다. 미주 한인들을 위한 활발한 도움의 활동 중에도 서순경 이사장은 이화를 떠올렸다. “내 모교, 자랑스러운 이화는 나의 힘이 되고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는 서 이사장은 "형편이 어려우면 학업에 매진하기도 성공하기도 좀처럼 힘든 세상입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한 청사진이 뚜렷하고 착실한 학생들이 장학금을 발판으로 꿈을 이루면 좋겠습니다"는 뜻을 전하며 본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매 학기 2만 달러, 총 1억 8천만 원에 달하는 ‘서순경장학금 (Scholarship for Law School)’을 지원해오고 있다. “이화는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여성 교육의 선두주자로서 소명을 다해야 합니다. 이화가 한국 사회와 전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우뚝 서기 바랍니다”라는 소망을 전한 서 이사장은 후배들에게 “이화와 이화인들의 미래를 응원하며,후배들에게 나눔의 기쁨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전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당부를 남겼다. 이화로 향하는 마음, 소중히 담아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이화소식 129호 인터뷰이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12-23 조회 552 소중한 인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교육하고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대에 이웃과 나라를 항상 기억하며 세계 공동선을 창출하는 데 이화의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은이선 동창(동양화 96졸) 이선장학금 4억 원 후원은이선 동창(동양화 96졸)이 조형예술대학 후배들을 위해 ‘이선장학금’ 4억 원을 기탁했다. 이선장학금은 향후 매년 동양화전공 학부생 및 대학원생 10명에게 각 2백만 원씩 지원될 예정이다. 은 동창은 지난해 학생들이 최첨단 환경에서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형예술대학교 실습 공간 리모델링을 위해 1억 원을 후원한 바 있다. 은 동창은 본교 동양화전공 재학생에게 해외 아트 바젤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전시 기획을 통해 대중에게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등 한국문화 전파와 인재 육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정소영 흥한재단 이사장(기악 62졸)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 3억 원 기부정소영 흥한재단 이사장(기악 62졸)이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 3억 원을 기부했다. 정 이사장은 “졸업 60주년을 맞은 해인데, 학관 신축 6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 및 재건축에 착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부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정 이사장은 이번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뿐 아니라 음악대학 실기 연습실 개선사업, 학교발전을 위한 기금, 장학금 후원 등으로 총 기부액이 15억 원을 넘어서며 이화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하은희 의과대학장, 이화의대연구기금 외 총 1억 1천만 원 기탁하은희 의과대학장(의학 87졸)이 첨단 의학 및 의과학 연구 강화를 위해 ‘이화의대연구기금’을 신설하고 1억 원을 기탁했다. 하은희 학장은 “이화에 재직하며 어린이 건강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드문 분야를 연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 이화에 감사하다”고 전하며 “이화 발전을 위한 의학 연구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며 솔선수범해 기부하게 되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꾸준한 기부를 이어오며총 후원액이 2억 3천만 원을 넘어선 하 학장은 이번 1억원 후원에 더해 ‘이화 2030+ 발전기금’에도 1천만 원을 기부했다. 故 박보희 전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화학당에 장학기금 1억 원 기부사회사업학과 제1회 졸업생으로 국제연합 아·태 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사회개발정책을 담당했고, 1956년부터 1984년까지 본교 사회복지학과에 재직했던 故 박보희 교수(사회사업 51졸)가 여성지도자양성을 위한 장학기금 1억 원을 학교법인 이화학당에 기탁했다. 이화의 초석을 다졌고 전후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끈 김활란 선생의 리더십을 기리는데 쓰이길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 신경희 동창(약학 51졸), 신경희장학금 1억 원 기부신경희 동문(약학 51졸)이 ‘신경희 장학금’ 1억 원을 쾌척했다. 이번 기부로 ‘신경희 장학금’ 등 후원액은 3억 원을 훌쩍 넘었다. 이화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신 동창은 “세상을 통해 받은 것을 세상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장학금을 받은 약학대학 후배들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해 이화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로 자라나기를 바란다”고 기부 소감을 전했다. 오혜숙 동창(의학 78졸), 이화Medi•Healthcare클러스터기금 및 오혜숙의학장학금 1억 원 후원의대동창회장과 의료원발전후원회장을 역임하며 이화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오혜숙 동창(의학 78졸)이 ‘이화Medi•Healthcare클러스터기금’ 및 ‘오혜숙의학장학금’에 각 5천만 원, 총 1억 원을 후원했다. 한결같이 모교의 발전을 응원해온 오 동창의 후원액은 이번 기부로 3억 6천만 원이 되었다. 오 동창은 “이화를 통해 의사가 되었으며 기독 의사로 사명감을 가지고 의미 있는 삶을 실천하게 되었다”며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마지막 날까지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정미라 동창(의학 83졸), 정미라장학금 1억 원 지원정미라 동창(의학 83졸)이 ‘정미라장학금’ 1억 원을 기탁했다. 정미라 동창은 “하나님의 은혜로 대가 없이 많은 것을 받아, 기회가 되면 갚겠다고 결심했다”며 “어떻게 갚을까 고민하던 중, 후세대를 키우는 일에 의미 있게 쓰고자 장학금을 지원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기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현재 대한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 재직 중인 정 동창은 장학금 후원과 더불어 의과대학 동창회 총무이사로 활동하며 이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피상순 동창(의학 84졸),이화 2030+ 발전기금 및 의과대학발전기금 1억 원 후원피상순 동창(의학 84졸)이 ‘이화 2030+ 발전기금’ 및 ‘의과대학발전기금’에 각 5천만 원, 총 1억 원을 후원했다. 피 동창은 “이화에 재학하며 장학금을 받고, 많은 분들께 사랑과 관심을 받아 감사하는 마음이었다”며 “이화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이화에 되돌려 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나누어 가질 때 내 마음이 열리고, 즐겁고 충만해지는 것 같다”는 피 동창은 이화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모금에 동참해 기부액이 2억 3천만 원에 달하게 됐다. 나에게 주어진 몫은 사회로 환원하고자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김준희 동창(영문 60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12-22 조회 1305 김준희 동창(영문 60졸)이 모교 발전을 위해 51억 8천여 만 원을 쾌척했다. 김준희 동창은 “평소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나의 몫이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자 실천을 결심했다. 가족들의 따뜻한 환영과 협조 속에 기부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화라는 존재가 사회에서 큰 보증인이 되어주어 이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이 자랑이자 보람이라는 김 동창은 “이화를 졸업하고 보니 이화라는 존재가 사회에서 나에게 큰 보증인이 돼주었다. 이번 기부는 이화의 졸업생이라는 큰 혜택을 누린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고등교육이 남성의 전유물이던 시절 이화에 입학해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이 누릴 수 없었던 많은 혜택과 지원, 선진화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다며 “지금껏 나 홀로 누린 것처럼 느꼈던 많은 혜택에 대해 늘 사회적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기부를 함으로써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벗은 것 같아 홀가분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화에서 받은 교육과 더불어 나눔, 섬김, 배려로 대표되는 이화정신은 김준희 동창의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 동창은 졸업 후 전후 최대 구호기관이었던 ‘월드비전’에서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는 해외 후원자들의 영문 편지를 번역하며 본인이 받은 교육과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번역 활동을 함께하던 영문과 후배들이 사회복지단체 ‘굿네이버스’를 설립하자 김 동창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해 30여 년 동안 꾸준히 지원을 이어오는 등 이화정신을 삶으로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나눔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과학교육과 교수회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10-26 조회 495 과학교육과 교수회에서 ‘과학교육과 60주년 장학금’을 쾌척했다. 이번 장학금 모금에는 공진욱, 박지훈, 신동희, 안덕근, 우애자, 이정훈, 이현주, 임미연, 임연환, 정영란, 정종우, 최애란 교수가 참여했으며 총 후원금액은 5천만 원이다. 과학교육과 교수회는 기부금을 전달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 학생들이 끊임없이 꿈꾸고,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내고,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나가며, 우리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라는 소망을 전했다. 설립 60주년, 새 시대를 준비하다 1951년 사범대학 내에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과, 수학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과학교육과는 1962년 전 세계적인 통합과학교육 추세에 따라 중등학교 과학교육의 중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과학교사 양성 전문화를 위해 사범대학 과학과로 개칭하고 문리대학에 학과를 신설하고 순수 과학자 양성 역할을 분리하였다. 본교 과학교육과는 1969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과학교육과로 명칭변경하고 과학교육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설립 60주년을 맞이한 과학교육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과학 문화 확산을 촉진할 융합인재를 양성하고, 평생과학교육 시대의 융합과학 연구와 교육을 선도하는 학과로 도약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이를 위해 과학교육과 교수들과 선배들은 후배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수학할 수 있도록 꾸준히 장학금을 조성해오고 있다. 과학교육과 교수회는 이번 ‘과학교육과 60주년 장학금’ 모금 이전에도 인재 양성을 위해 나눔에 앞장섰다. 과학교육과 50주년에는 과학교육과 교수 18명이 1억 4천만 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마련하였고 이에 화답하듯 많은 제자들이 뒤이어 후원에 참여하여 ‘과학교육과 50주년 장학금’에 총 2억 2천 5백여만 원이 모금되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과학교육과 교수회는 지속적인 장학금 조성을 위한 노력에 더하여 학생들이 어려운 상황에 대면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펼쳐질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진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한다며 코로나19 극복 긴급 모금에 1천만 원을 선뜻 기부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이화 공동체는 누구에게나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이겨내는 곳입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더욱 희망을 품고, 밝은 미래를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으면 합니다”라고 전하며, 기부를 통해 금전적 도움을 넘어 학생들에게 ‘우리는 함께 한다’는 메세지와 더불어 용기와 희망을 선사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스승의 나눔과 사랑이라는 선한 영향력 안에서 성장한 제자들은 스승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기대에 부응하여 더 나은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리더로 성장할 것이다. 이화국제재단 50주년, 그 역사의 강을 거닐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이화국제재단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10-21 조회 399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재단(International Foundation for Ewha Womans University 이하 이화국제재단)은 1970년 미국인과 캐나다인 등 외국 국적의 이화의 친구들과 미연합감리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 그리고 북미주에 거주하는 동창 및 동창의 가족이 본교를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법인이다. 이화국제재단은 학교의 교육 환경과 설비 개선을 위한 활발한 후원은 물론, 북미의 제반 기관 및 이화 동창들 간의 협력 의식을 고취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설립 이후 이화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고, 2020년 창립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화국제재단 그 역사의 강을 거닐다1970년 설립된 이화국제재단은 19세기 북미주 감리교 여성들의‘ 여성을 위한 여성의 사역(woman’s work for woman)’운동에 근원을 두고, 선교사 파견과 자금 지원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설립에 물꼬를 트게 했다. 이후 이화국제재단은 반세기 동안 북미주 지역 기독교인들의 운동을 넘어 성별과 국적, 인종과 출신학교를 초월한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거대한 물결로 확대되며 김활란 박사가 꿈꾸었던 국제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이화국제재단은 지난 50년간 약 $18,187,530의 기부금을 모금했고, 이화에는 약 $15,890,000의 후원금을 보내왔으며, 특히 한국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이화의 건물 신축과 우수한 교수진 확보, 교육 시설 및 교육 프로그램의 확충, 장학금 지원을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였다. 100주년 기념 도서관, 목동병원, 대강당, ECC, 기숙사, 이화서울병원 등 이화 대표 건축물의 건축 모금에 참여했고, 교수들의 연구비 및 120개가 넘는 장학 기금의 출연 등 50년간 이화여자대학교의 다각적인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이화와 이화국제재단의 50년을 기억하다 이화국제재단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며 2020년 4월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하고 지난 4월 23일 비대면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김승주 동창(국제학부·16졸)이 사회를 맡아 감사예배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앤 셔러 심슨 전 부 이사장의 개회 기도와 마크 멀리낙스 이사장의 환영 인사로 문을 열었다. 이후로 김은미 총장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의 축사, 샤론 레이더 전 이 사장의 기조연설이 이어졌다. 김은미 총장은“ 이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대신해 이화국제재단의 기도와 성원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도전과 변화의 시대에 이화는 선구자로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용기와 믿음으로 앞장서 나아가겠다”며 이화국제재단에 그 길을 함께 해주기를 요청했다. 이어 ‘명예이화인’으로 이화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이화국제재단과 이화여대가 함께 세계 여성 교육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나갈 것을 믿는다”는 축사를 전했다. 샤론 레이더 전 이사장 은‘ 기억하라(Remember)’ 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통해 “이화국제재단이 이화여대와 함께 이룬 것을 기억하는 것이 미래를 헤쳐 나갈 힘과 용기가 된다”고 연설했다. 이어 이화국제재단 전 사장 수잔 스티븐스를 비롯한 전 이사들과 장학금 및 기금 수혜자, 이화국제재단의 친구들이 영상으로 하 메시지를 전하며 이화국제재단 창립 50주년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한데 어우러지며 흘러갈 50년을 기약하며 이번 행사에서는 특별히 이화국제재단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시작하는‘창립 50주년 기념 희망기금(The 50th Anniversary Hope Fund, 이하 희망기금)’을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희망기금은 본교에서 공부하는 개발도상국 유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금이다. 이번에 신설된 희망기금 안내와 축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개설된 Online Book 소개, 더 많은 이들에게 이화국제재단의 활동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순서가 이어졌다. 이화국제재단은 지난 50년간 각종 후원을 통해 이화의 발전과 이화인의 성취를 도와주는 든든한 울타리로써 이화를 지탱해왔다. 오로지 이화의 인재 양성을 위해 면면히 흐르던 이화국제재단의 50년, 그 사랑의 강물은 많은 이화 학생에게 흘러넘쳐 그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그 의미가 담긴 희망기금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선도해나갈 세계 여성을 위한 교육 기부로 그 지평을 넓혀갈 계획이다. 1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이화가 24만 졸업생을 배출한 세계적인 여성고등교육기관이 되기까지 그 역사를 함께 해 온 이화국제재단은 앞으로도 이화의 새로운 50년을위해 한데 어우러지며, '더 나은 사회’라는 한 방향으로 굳건하게 흘러갈 것이다. 나눔과 섬김의 이화 정신을 실천하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유중근 UNAI Korea 이사장 · 경원문화재단 이사장(영문 67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10-15 조회 552 유중근 UNAI (The United Nations Academic Impact) Korea 이사장은 삶을 통해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며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위한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인적 세계시민교육의 종합 교육 프로그램인 GRACE (Globally Responsible and Advanced Citizenship Education) School의 설립 및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경원문화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수여해오고 있다. 또한, 대한적십자사 최초의 여성 총재를 역임하며 취약계층을 향한 ‘희망풍차 나눔·봉사 프로젝트’를 이끌며 공감과 소통, 협력의 리더십으로 대한적십자사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희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나눔2011년 10월, 대한적십자사 창립 106년 만에 최초의 여성 총재에 취임한 유중근 이사장은 4대 취약계층 맞춤형 결연인 ‘희망풍차’와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희망의료센터’, 생명나눔운동 ‘300만 헌혈운동’을 통합한 ‘희망풍차 나눔 프로그램’을 출범시키며 적십자사가 새 시대의 흐름에 부응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우수 직원들이 해마다 해외연수를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원봉사자를 위한 교육을 추진하며 적십자사 구성원 역량강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적십자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나눔은 희망을 만드는 투자유중근 이사장은 대한적십자사 총재 역임 후, 한동대학교 GRACE School을 통해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가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섬기며 정직함과 성실함, 책임감을 바탕으로 우리가 당면한 환경 문제, 차별 등의 전 지구적인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우리는 거름 세대입니다. 나무가 잘 자라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의 우리의 몫입니다.”라며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인 청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성과 지성을 갖춘 전문 지식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라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누면 나눌수록 행복이 채워진다이화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이화 정신인 나눔, 섬김, 배려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온 유중근 이사장은 이화가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후원과 기도로 모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이화 사랑과 인재 육성에 대한 열정으로 매년 '경원문화재단 장학금' 등으로 후원한 액수는 6억 원에 달한다. 그의 꾸준한 나눔의 실천에 가족 또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유중근·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부부는 ‘대한적십자사 레드크로스 아너스 클럽’에 각각 이름을 올렸고, 아들과 함께 ‘사랑의 열매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여 ‘패밀리 아너’에 선정되는 등, 온 가족이 사회공헌을 실천하고 있다. 최창걸 명예회장이 이끄는 고려아연은 이화의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이념에 공감하여 지속적인 후원을 통해 이화 발전에 큰 힘이 되고 있으며, 최근 본교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소식에 흔쾌히 10억 원을 기탁하였다. 유중근·최창걸 부부의 고귀한 뜻을 품게 된 학관은 이화의 핵심 교육공간으로 거듭나 기독교 정신으로 공동선을 창출하는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는 요람이 될 것이다. 유 이사장은 “생각할수록 ‘나눔은 채움’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남에게 준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됩니다.”라며 나눔의 기쁨을 전했다. 미래 교육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권영하 동창(국문 61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6-22 조회 663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발전에 특별한 관심으로 꾸준히 기부해온 권영하 동창(국문 61졸)·박승 전(前) 한국은행 총재 부부. 특히 권 동창은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학교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이번 학관 리모델링 재건축 기금으로 1억 원을 기부했다. 권 동창에게 교육 발전에 쏟았던 기부 열정과 이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에 대해 들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이화에 보답하다권영하 동창(국문 61졸)·박승 전(前) 한국은행 총재 부부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정도로 평소에도 기부 철학이 남달랐다. 부부는 특히 대한민국 교육 발전에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다양한 교육기관에 활발한 기부활동을 펼쳤다. 그런 부부에게 이화여대 학관 리모델링 소식이 전해졌다. 권영하 동창은 지난 4월 30일,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 1억 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권 동창은 자신의 딸과 며느리도 이화 동창일 정도로 학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학관 리모델링 소식을 듣고 학교에 들러 학관과 캠퍼스를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학창 시절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던 이화에서의 소중한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이화에 기부할 기회가 마련되어 정말 기뻤습니다.”전통과 미래를 잇는 새로운 교육 공간으로권영하 동창이 재학할 당시에는 지금의 ECC가 있던 자리에 대운동장이 있었고, 학관은 건축 전이었다. 재학 당시와 비교했을 때 많은 변화가 있는 학교인데도 권 동창은 낯설지 않았다. 권 동창은 개교기념일에 자신의 동기들과 함께 자주 학교에 들러 학교의 변화를 꾸준히 지켜봐 왔다. “학교가 과거의 건물을 잘 보존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발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 기금이 많았지만, 학관 리모델링 소식을 듣고 이화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학관 리모델링 재건축 기금을 후원하게 됐습니다. 조용히 후원하려고 했는데 많은 환대를 받아 부끄럽습니다.” 권영하 동창의 기부로 이화는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학관 보수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학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135년 이화 역사를 넘어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공간이자 교육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할 계획이다. 이화 발전의 씨앗을 뿌리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최명숙 총동창회 前 고문(정외 57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4-19 조회 946 총동창회장으로서 모교를 위한 헌신과 봉사에 앞섰던 故 최명숙 고문이 ‘최명숙 장학금’으로 1억 원을 이화에 기부했다. 이화를 위하여 봉사하고 나누는 삶을 보낸 최 고문은 임종을 앞둔 중에도 이화를 위한 후원의 의지를 밝혔고, 이에 유족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장학금을 후원하여 주셨다. 새 시대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다 이화는 자부심이자 보람이며. 모교를 위해 봉사하고 학교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라던 故 최명숙 고문은 1957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만 명이 넘는 이화동창을 이끄는 총동창회장 (1999년~2003년)으로서, 후원자로서 늘 이화의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고인이 1999년 총동창회장에 취임하던 당시 사회와 학교는 2000년이라는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 앞날에 대한 각오와 포부로 가득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에 총동창회장에 취임한 최명숙 고문은 동창회 회칙과 조직을 재정비하고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기존 동창회의 사업을 계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가하여 튼실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모교와 동창회의 발전은 분리할 수 없다는 신념 하에 더 많은 동창이 동창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해외 동창 참여 기회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온라인 동창 포털 사이트인 ‘이화인 닷넷’을 개설하는 등 이화여자대학교 총동창회라는 거대 조직에 새 시대에 걸맞는 새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큰 족적을 남겼다. 이화 발전의 씨앗을 뿌리다 총동창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故 최명숙 고문이 가장 공을 들인 모교 지원 사업은 대강당 보수 사업이었다. 입학식과 졸업식, 개교기념일을 비롯한 학교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는 공간이며 채플의 추억을 담은 대강당은 이화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특히, 고인은 대강당에서 졸업식을 한 첫 졸업생으로 대강당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고 한다. 대강당의 신축을 지켜봤던 학생이 반세기만에 하는 보수공사에 총동창회장으로서 모금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다른 동창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기에 내가 먼저 성의껏 내게 되었다’던 최 고문은 총동창회의 모금활동을 이끌며 2000년대 초반 20여 억 원 모금이라는 큰 성과를 내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이화의 새 출발에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성공적인 모금으로 새롭게 태어난 대강당에 이화인이 다 같이 모여 성탄축하예배를 드린 순간이 매우 뿌듯했다던 故 최명숙 고문. 학교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에 참여하다 보니 학교에 대한 애정도 자연스럽게 커졌다며, ‘우리 후배들도 처음에 학교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갖기 시작하면 그 관심의 씨앗이 자라 나중에 크게 열매 맺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던 고인의 말씀은 나눔과 봉사를 기쁨으로 생각했던 최 고문의 아름다웠던 삶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고인은 총동창회장으로서의 봉사뿐만 아니라 후배를 위한 장학금으로 때로는 학교발전을 위해 매번 아낌없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화 발전의 매 순간마다 함께했던 고인은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에 열심이었다. 2001년 1억 원을 쾌척하여 ‘최명숙 장학금’을 조성하고 2009년 이화 후배인 손녀의 이름으로 ‘송미영 장학금’을 새로이 만들어 1억 5천만 원이 넘는 장학금을 후원하였다. 또한, 고인이 조성한 장학금 이외에도 학교에서 모금하는 각종 장학금 후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여성인재양성에 힘을 보탰다. 이화가 발전하는 것은 후배들뿐만 아니라 졸업한지 수십 년이 지난 본인에게도 큰 힘과 활력소가 된다며 물심양면으로 이화를 뒷받침한 고인의 모교 사랑은 이화 발전의 씨앗을 심었고 이를 발판으로 이화는 새 천년을 맞이하여 도약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故 최명숙 고문이 보여준 이화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은 이화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기적을 만드는 우리, 이화인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2018졸업생 취업스터디 모임기부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3-18 조회 1260 2018년 2월 졸업생 김진선(국제학 18졸), 이소윤(기독 18졸), 이정민(국제학 18졸), 이하선(영문 18졸), 정윤조(국제학 18졸), 최유리(기독 18졸) 여섯 명이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에 뜻을 모았다. 2017년 7월, 취업을 위해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함께 스터디를 시작한 것을 인연으로 졸업 후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는 여섯 명은 졸업 전 함께했던 소중한 시기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갠지스의 기적’ 이라는 그들만의 특별한 모임 이름을 학관 후원자 기념판에 남기게 되었다. 기적을 만드는 우리, 이화인“취업준비를 위해 여섯 명의 구성원이 처음 모인 날, 한 친구가 스터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인도 여행을 다녀온다 하였습니다. 나머지 친구들은 여행을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장난스럽게 각자 자신의 증명사진 뒤에 소원을 적어서 여행을 떠나는 친구에게 전해주며 ‘갠지스 강에 뿌려줘!’라고 부탁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재미있는 추억이 장난스러운 부탁이었지만 졸업반 여섯 명의 마음 한 켠은 그만큼 절박하고,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여 2017년 12월 여섯 명 전원이 취업에 성공하는 기쁜 결과를 얻었다. “당시 갠지스 강에 소원을 적은 사진을 뿌린 덕인 것 같다며, ‘갠지스의 기적’이라며 함께 웃었는데 이것이 스터디그룹의 애칭으로 굳어져 졸업 이후에도 이 이름으로 모임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회초년생으로서 비슷비슷한 고민들을 서로 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라며 유쾌하게 모임의 유래를 밝혔다. 힘든 시절을 함께 이겨내서 그런지 어떤 친구들보다 애틋하고 서로 의지가 된다는 이들은 모교 사랑에도 한 마음 한 뜻을 모았다. “저희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학교에 지원을 많이 받았어요. 스터디원들이 모여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 연습하려면 공간이 꼭 필요한데 공간을 대관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어려움이 많았을 거예요, 저희는 학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ECC 장소 제공, 취업 멘토링, 자기소개서 컨설팅 등을 활용하면서 학교에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라며 이화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화는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는 미래의 이화를 만든다그들에게 학교에서 제공했던 지원은 취업에 대한 길라잡이 그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비록 친구들과 같이하고 있지만 취업이라는 앞이 보이지 않고 외로운 길을 이화가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든든함은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되었으리라. 이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에 받았던 도움이기에 고마운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고 스터디를 하며 ‘우리가 나중에 취업하면 학교에 꼭 받은 것 돌려주자’라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약속하기도 했다는 이들은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 모금에 참여하여 당시의 다짐을 지킬 수 있었다.“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와 이화인들의 SNS, 졸업생들끼리 네트워킹 하는 오픈 카톡방을 통해서 ‘학관 리모델링 및 재건축 기금’ 모금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학관이 새로 단장하는데, 학교에 이름을 남길 수 있고 분납도 된다더라 하면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다들 자신들이 기부한 것들을 인증하기도 하고 서로 멋지다고 응원해주면서 이화인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라며 여섯 명 모두 학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이 기부를 놓칠 수 없었다는 기부 소감을 전했다. 최유리(기독 18졸) 동창은 “이화는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인 것 같아요! 다시 19살로 돌아가 대학을 선택하라고 해도 주저 없이 이화를 선택할 거라고 저희들끼리 많이 이야기 합니다”라며 이화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화를 다니며 개인과 사회에 있는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 폭을 깊고 넓게 펼칠 수 있는 덕목을 배웠고, 너무나 능력 있고 똑똑한 이화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더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 여섯 명의 이화인들은 사회에 나와서 보니 이화의 힘이 더 대단함을 느꼈다 한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할 때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와 이직을 할 때도 어디든 이화인이 있기 때문에 선배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업계와 회사가 어떤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지 조언해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선배님들께서 어디든 계십니다. 그래서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이화가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기부 많이 하면서 이화에서 받은 가르침과 사랑을 되돌려 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여섯 명의 동창. 이화는 ‘갠지스의 기적’을 만들었고 ‘갠지스의 기적’은 이화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선배들의 응원의 한 마디김진선(국제학 18졸) 지금은 여러모로 힘들 수 있지만 이화까지 왔다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리뉴얼한 학관에서 소중한 추억 많이 쌓으세요!이소윤(기독 18졸) 이화의 인문대 상징인 학관에서 원하시는 모든 것들을 마음껏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이정민(국제학 18졸) 정든 학관에서 쌓은 추억만큼 새로워진 학관에서 행복한 기억 많이 만들어주세요!이하선(영문 18졸) 지금은 지겨울 지라도 훗날엔 그리워질 날이 올 겁니다! 선후배들님의 피, 땀, 눈물이 서려있는 유서 깊은 전통의 학관과 리뉴얼 될 새로운 학관 모두에 많은 지속적인 애정 부탁드립니다!정윤조(국제학 18졸) 이화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관이 아무런 조건 없이 제게 선물한 추억들을 후배님들도 경험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최유리(기독 18졸) 졸업하고 학교에 이렇게 관심과 애정이 많은 학교는 이화뿐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디서든 자신 있고 당당한 이화인이 되시면 좋겠어요. 사회에 나와서 멋진 모습으로 만나요! 2ⁿ 으로 퍼져나가는 나눔 릴레이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장건수 연세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1-19 조회 1083 심리학과 학부생에게 지원되는 ‘임연화장학금’은 2011년부터 10년 동안 꾸준한 후원의 손길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 장학금은 故 임연화 동문(교육심리 68졸)의 부군인 장건수 연세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가 아내의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조성했다. 장 교수는 2011년 사랑하는 부인이 작고하자 “아내는 이화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편을 잡았던 인연이 있어 모교와 심리학전공 학생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며, “아내가 남기고 간 예금을 가장 값지게 쓰고 싶어 아내의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가족과 뜻을 모았다"는 기부의 뜻을 전했다. 이렇게 시작된 장학금 기부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이어져 어느덧 1억 원이 넘는 금액에 이르렀다. 사랑하는 이의 뜻과 이름을 이화에 영원히 남기다 故 임연화 동문은 기독교인으로, 생전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뜻을 자주 밝혔다고 한다. 아내가 병상에 있게 되면서 “내가 교회에 갈 수 없게 되었으니 나 대신 가달라” 하는 부탁에 이화여대 대학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는 장건수 교수는, 아내의 신앙이 담긴 평소 바람을 기억하고 작고 이후에 대신 이루어주기로 했다. “2011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두 딸들이 어머니의 모교에 장학금을 기탁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먼저 주었지요. 사회 환원에 뜻이 있던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가족 모두가 흔쾌히 찬성을 하였고, 이 인연으로 이화에 아내의 이름으로 된 ‘임연화장학금’을 기탁하게 되었습니다.” 장 교수는 늘 유쾌한 모습으로 이화를 방문한다. 평소 고인의 소원이자 바람을 기억하고 이루어 준 것이 기쁘고, 아내의 이름과 뜻이 이화에 영원히 남게 되어 고인을 추억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ⁿ 으로 퍼져나가는 나눔 릴레이 장건수 교수의 이화와 이화의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아내에 대한 사랑만큼 지극하다. 매년 열리는 이화장학후원이사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장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따듯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화여대 이외에도 여러 후원 단체에도 기부하고 있는 장건수 교수는 이러한 장학생들과의 만남과 후원하는 학생들의 감사편지 등을 통해 그들의 처지를 알게 되고,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게 되니 돕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레 점점 더 커져 꾸준한 기부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장건수 교수가 장학금 기부를 통해 바라는 것은 나눔의 릴레이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는 수학자답게 “한 명이 두 명에게만 후원을 해도 2¹, 2², 2³, 2⁴ ... 2ⁿ과 같이 금세 엄청난 규모로 발전될 것입니다. 릴레이처럼 이어진 기부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닿아 문화가 되고, DNA로 심겨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대는 기부자인 장 교수만의 바람이 아니라, 수혜 학생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임연화장학금을 통해 도움을 받은 많은 장학생들의 편지에는 유난히 ‘자신도 나중에 커서 후배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장 교수는 “장학금을 통해 아내의 소중한 뜻과 마음을 받은 모든 학생들이 적은 금액이어도 다시 후원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들로 잘 성장하여 다음 기부로, 또 다음 기부로 릴레이를 이어 갔으면 합니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기부의 첫 발자국을 함께하여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키다리 선배의 응원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익명(통계학과)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12-22 조회 1076 통계학과 동창이 유학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300만 원의 장학금을 후원했다. 익명을 요청한 기부자는 어려운 시기에 받았던 도움과 그 순간의 감동을 기억하며 더 많은 이화인들과 그 기쁨을 함께 하고자 나눔을 시작했다. 이 후원으로 조성된 장학금은 현대 확률을 정립하여 많은 통계학도들에게 존경받는 세계적인 수학자의 이름을 따라 ‘Andrey Kolmogorov(안드레이 콜모고로프) 장학금’으로 명명되었으며 통계학과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 중 미국대학 통계학 박사과정에 지원하는 1명에게 지급된다. 나눔의 릴레이, 나눔의 감동을 나눔으로 전달합니다 유학 생활 중 여러 장학금을 알아보고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에 기부의 중요성을 체감했다는 익명의 기부자는 “장학금을 후원해 주신 분들에 대한 깊은 감사함과 누군가가 나의 학문적·전문적 성과를 기대하고 응원한다는 든든함을 느껴 장학금을 수혜 받은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이런 감동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며 힘들었던 것은 한 학기동안 살아갈 돈이 충분히 있는가에 대한 계산을 항상 해야 하는 것 이었다”라는 기부자는 가을과 봄에 받는 조교 급여를 일부 저축해 여름방학 동안 생활하면서 언제 큰 지출이 발생 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가지고 공부해야 했다. “다른 과 조교 자리나 장학금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도움을 받았을 때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생김과 동시에 이 돈을 어디에 쓸지, 몇 달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함께 들었다. 경제적 안정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받은 장학금은 '아, 살았다!' 하는 안도감을 주었다”라며 장학금을 받던 순간의 기분을 전했다. 통계학과 동창은 "당시 수혜했던 장학금들의 주된 선발조건은 신청자가 학문적·전문적 자격을 갖추었는가, 여성 교육 발전에 기여할 것인 가였다. 이러한 선발 조건은 기부-수혜자가 직접 만나 장학금의 의미를 설명하고 당부하지 않아도 수혜자로 하여금 장학 후원에 담긴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라고 밝혔다.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든든함은 타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에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큰 위안과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기부자는 본인이 경험했던 것처럼 이화의 후배들에게도 자신의 꿈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에 처음 장학금을 받았던 날부터 여건이 되면 꼭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키다리 선배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내가 기부할 여건이나 자격이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익명의 기부자는 대외협력처에서 1년간의 모금 및 사용현황을 정리한 ‘2019-2020 연간보고서’에서 젊은 층의 기부 현황을 보고 나눔에 대한 의지를 실천에 옮겼다.“20~30대의 기부 참여율이 40~50대보다 높은 것을 보았다. 많은 이화인들이 액수나 자격을 따지지 않고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기부를 훗날로 미루지 않고 시작할 수 있었다”는 기부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기이고 특히나 유학은 돈이 많이 든다는 선입견 때문에 유학을 꿈꾸던 후배들도 학업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지금이 기부를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라는 생각했다”는 후원의 계기를 밝혔다. 후배들에게 나의 꿈을 누군가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음을 또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기부자는 장학금 후원과 더불어 "선배가 응원하고 있으니 하고자 하는 바를 꼭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을 남겼다. 꿈을 잃지않고 소녀가 성장해 갈수 있도록 든든하게 뒤에서 후원을 해주었던 키다리 아저씨 처럼, 이화의 '키다리 선배'가 불투명한 미래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전한 것은 단순한 장학금이 아니라 불안함에 움츠린 어깨를 토닥이는 든든한 손길이자 어려운 상황에서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이화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이다. 이제는 후원자가 된 선배라면 장학생들의 메세지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선배라면장학생 출신 후원자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11-10 조회 1192 선배라면장학금 장수후원자들의 멈출 수 없는 후배사랑 이야기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선배라면장학금 10년 후원자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11-09 조회 1182 선배라면장학금은 선배에 의한,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재학생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선배라면 누구나 월 1만원 정기후원으로 후배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2010년 11월 시작된 본 캠페인은 현재 모금액 30억 원, 장학생 3천명 이상으로 국내 최초, 최장수 소액기부 프로그램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후원을 이어가고 계신 200여 명의 장수후원자들의 응원이 있어 더욱 특별합니다. 1호의 추억 김석향(북한학과 교수, 선배라면장학금 1호 기부자) 후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 보면, 2010년 쌀쌀했던 어느 날, 연구실에 석사과정 학생이 저에게 따뜻하게 드시라며 차를 한 잔 사들고 와 있었습니다. 마침 선배라면장학금 제도를 시작한다는 메일을 보고 있던 중이었는데, 당시 일정한 수입이 있던 그 학생에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차 한 잔 사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학생에게 한 달에 차 한 잔으로 장학금을 후원할 수 있다며 동참을 권유했고, 함께 선배라면장학금 후원약정을 위해 대외협력처로 갔습니다. 그렇게 제가 선배라면장학금 ‘1호’ 약정자가 되고 그 학생이 ‘2호’가 되었네요.지나간 시간 동안 수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이 가장 큽니다. 그렇지만 이화의 여러 선생님과 선배님, 같은 과 친구들 손길과 후원의 힘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결국 나눔과 후원이란 내가 받았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어린 시절에는 ‘도움을 준 손길의 받은 만큼 갚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도움을 줄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나눔과 후원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배’라는 이름만으로(황유경 동문, 생물 89졸) ‘선배라면’ 이라는 이름을 보고 선배 노릇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팍팍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후배들에게 선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해도 힘이 날 거라 믿었습니다. 10여 년 전 사회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을 위해 멘토링을 시작했습니다. 이외에 또 다른 방법의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때에 선배라면장학금을 알게 되어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급여에서 이 정도 나가는 것은 크게 무리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부담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작은 나눔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크게 다가가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선배라면장학금을 통해 단순한 금전적 도움 뿐 아니라 ‘선배가 여기서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화인들은 대단히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어서 모든 걸 스스로 하는 것이 익숙하죠.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던가, 후배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일이 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늘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생활하다가 졸업을 했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선배가 되어 멘토링과 장학금 후원에 참여하게 되면서 당시 선배들이 지금의 저와 같은 심정으로 저와 동문들을 지켜보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해도 됩니다. 살면서 힘든 일을 만나더라도 선배가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후원의 기쁨을 함께하기를 (이순남 의학과 명예교수, 이화아너스클럽 회원) 선배라면장학금이 어느덧 10주년이 되었고 많은 분의 동참으로 큰 성과를 이루고 있어 기쁩니다. 본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환경에 의해 학업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지만, 국가와 사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수 없으므로 부족한 부분은 이화의 모든 구성원이 학생과 학교의 발전을 위해 지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원을 받은 학생은 졸업 후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어 본인이 받은 후원을 사회나 후배에게 환원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후원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부담이 없는 소액기부이기 때문에 자동이체를 신청하고 통장에서 계속 이체되도록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제게 나눔은 타인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 만든 아주 작은 습관이고, 후원은 그저 나누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기쁨을 얻는 일입니다. 선교사의 헌신으로 시작한 이화는 한국의 기부문화를 선도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화의 가족들이 아름다운 기부행위를 통해 모교의 발전, 훌륭한 인재 양성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불평등이 없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가치 있는 일에 동참하시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작은 정성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니 참으로 기쁘고, 바라기는 동창생 모두 아니면 최소한 50%의 동창생이 참여하여 후배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기를 바라봅니다. 지금 바로 행동에 옮겨 후원의 기쁨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5백 원으로 시작한 기부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이경혜 명예교수(간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09-15 조회 1415 간호학 전공 이경혜 명예교수(간호 68졸)가 본교에 근무하기 시작한 때부터 퇴직한 이후에도 꾸준히 후원을 지속하여 2020년 1억 원 이상 기부한 고액후원자의 나눔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인 기부자 명예의 전당 아날로그 월에 등재되었다.“1968년 졸업해서 학교의 추천으로 미국에 교환간호사로 갈 예정이었으나 신체검사에서 뜻밖의 결핵판정으로 부산에 낙향해 있다가, 1969년에 학교의 부름을 받아 이대동대문병원 학생기숙사 사감과 실습조교로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1964년 입학해서 2011년 퇴직까지 근 50년, 반평생 이상을 이화와 함께 하였네요.” 졸업 후 1년간 잠시 고향인 부산에 머물렀던 시간을 제외하고 이화와 오롯이 함께 한 세월이었다는 이경혜 교수는 2011년 퇴직 후에도 여전히 이화와 함께하고 있다. 5백 원으로 시작한 기부 이경혜 교수의 첫 기부는 졸업 전부터 참여하고 있던 밀알모임에서 후배들을 돕기 위해 만든 밀알장학금을 후원하면서 시작되었다. “학생 때부터 참여하고 있던 밀알모임에서 졸업 후 후배들을 돕기 위해 밀알장학금을 만들자고 하여 시작되었지요. 그 당시 조교 월급이 2천 원이었던 시절이었는데, 5백 원씩 매달 기부한 것이 시작이었네요. 그 후, 학교에서 모금할 때마다 거의 다 참여했어요. 십년발전계획 기금, 간호대학 건립을 위한 목적별 발전기금, 도서관, 과학관, 한우리기숙사 신축, 이대목동병원, 이대서울병원 신축 등 끊임없는 교내 모금활동에 모두 참여했어요. 정년을 10년 정도 앞두고는 이화의 발전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장학기금을 마련한 것이 가장 기쁩니다.” 이화에서 녹을 받는 교수로서 이화를 위해 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경혜 교수는 이화와 학생들을 위해 지속적인 후원을 이어왔다. “주인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청지기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재산을 활용하여 어떻게 타인에게 베푸느냐 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화에 빚진 마음으로 조교시절부터 현재까지 한달도 기부를 안해본 적이 없어요. 기부는 나에게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이자 습관이 되었습니다.”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저축할 수 있는 만큼 저축하되, 동시에 줄 수 있는 만큼 베푸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 하였다는 이경혜 교수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청지기 역할에 충실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화의 매 순간, 모든 장소를 고스란히 기억하다 오래 전 제작한 이화 대학원 배지를 아직까지 착용하는 이경혜 교수의 이화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이화는 제게 배움터이자 직장이었고 안식처였으며, 수많은 소중한 인연과 스승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제 삶을 이화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라는 이경혜 교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이화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인생의 대부분을 온전히 이화와 함께 한 이경혜 교수의 삶은 이화 곳곳에 녹아 들었고 이화의 역사는 이경혜 교수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학창시절부터 교수로 재직하던 때까지 이화의 중요한 순간부터 사소한 일화까지 어제, 오늘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표현하는 노교수의 기억력과 애정 어린 관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화는 격식과 품위가 있는 학교입니다. 그것이 이화의 전통이에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대강당에서⋯. 학관이 왜 C관인 줄 알아요? Classroom이 많다고 해서 C관으로 불렀어요. ⋯정의숙 총장님 이전에는 모두 힘들 때라서 학교 살림을 아주 검약하게 했어요. 환경이 정말 열악했는데⋯.”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에 즐거웠던 이경혜 교수의 회고는 마치 1960년대 이후 이화의 발전사를 압축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화의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곳 이경혜 교수의 관심과 애정이 닿지 않은 장면이 없었다. 이화의 학생들, 당당하게 세상 앞에 서기를 이화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이경혜 교수는 마지막으로 후배이자 제자들인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화의 학생들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합니다. 정말 공부도 잘하고, 똘똘하고, 실무도 잘하거든요. ‘선택 받은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해요.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압니다.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뛰어나고 남다른 자세를 가졌는지 말이에요. 다른 학생들과 느낌이 다릅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을 보면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충분히, 오히려 넘치도록 똑똑하고, 잘하는데 말이에요. 이화에 온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좋은 곳으로, 선한 뜻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우리 이화의 학생들이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든든한 후원,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은이선 동창(동양화 96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07-17 조회 1967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는 은이선 동창(동양화 96졸)이 후배들에게도 이화가 소중한 경험으로 남기 바란다며 조형예술대학 발전기금 1억 원을 쾌척했다. “선배가 내미는 손길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재학시절부터 생각했었다”는 은이선 동창은 20여 년간 간직했던 꿈을 든든한 후배 사랑으로 실천한 것이다. 특별히 “조형예술대학 후배들이 사용하는 랩실 기자재 구입 및 환경 개선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곳에 쓰이길 바란다”고 기부의 뜻을 전했다. 든든한 후원,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다이번 후원을 통해 조형예술대학 학생들의 실습 공간인 조형관 C동 B104호에 위치한 『메이커스랩 디지털샵』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최첨단 실습실로 새롭게 탈바꿈됐다. 리모델링된 디지털샵은 공간 분할이 없는 하나의 큰 개방 공간으로 재구성됨으로써 조형예술대학 학생들이 작업 결과물 및 워크스페이스를 공유할 수 있어, 작업능률 향상은 물론 커뮤니케이션 증대 효과까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디지털샵에 3D프린터, 레이저 커팅기, 공판인쇄기 RISO프린터 등의 디지털 기기를 구비하여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작업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전통적인 작품 제작 환경과 더불어 보다 폭넓고 다양한 실기 활동이 가능하게 된다. 대학에서의 공간은 단순한 교육 장소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미래의 인재들이 자라나는 창조의 공간이기도 하다. 은 동창의 후원으로 변모된 디지털샵은 이화의 학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마음껏 펼치며 무한한 가능성을 키워가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화여대를 다니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은이선 동창에게 학창 시절은 누군가의 딸, 막내, 학생과 같은 가족 또는 사회 구성원의 한 명으로서 틀에 갇힌 “나”가 아닌 사회적 편견이나 제약 없이 자기 자신을 형성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기였다고. 여성이라는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이화의 분위기,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는 이화 가족들,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 예술에서부터 법학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강의를 통해 은 동창은 사회에 진출해서도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바탕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실력, 자신감, 신념을 쌓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이화와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본인이 이화에서 경험하고 얻을 수 있었던 중요한 가치를 후배들 또한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은이선 동창은 “우리나라 학생들은 십대 때 입시준비를 하느라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부족해서 20대 때 ‘자아 찾기’ 시간을 가지죠. 이화 안에서 유연한 사고를 하는 법을 배우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사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좋은 환경과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누리세요.”라는 당부와 응원을 남겼다. 나눔이란 숨 쉬듯 자연스러워야 나눔은 그들이 가진 것을 나도 얻고, 그들도 나에게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얻는 동등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교감이기에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이나 우월한 위치로 하는 기부가 아닌, 숨 쉬듯 자연스러운 나눔의 태도를 가지도록 늘 생각한다는 은이선 동창. “후배들을 보며, 또 성장하는 제 딸을 보며, 앞으로 여성으로서 살아갈 이 세계를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예술의 꽃을 피우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김영희 교수(무용과)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06-04 조회 1815 2019년 5월 작고한 무용과 故 김영희 교수(무용 80졸)의 유족이 『김영희무용장학금』 1억 5천만 원을 기부했다. 이 장학금은 매 학기 학업과 무용 실기가 뛰어난 한국무용 전공 학부생 1명에게 500만 원이 지급된다.평생 가장 사랑한 세 가지 ‘이화, 무용, 제자’ 유족은 “고인의 이화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중환자실 투병으로 인해 자가 호흡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인이 말한 마지막 단어는 ‘학교는?’이었을 정도로 이화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뼛속 깊이 무용을 사랑하고 제자를 사랑했다.”라고 회고했다. 가족 모두 고인이 생전 가장 사랑한 세 가지가 학교, 제자, 무용이었음을 잘 알기에 故 김영희 교수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뜻을 전하며, 1억 5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였다. 故 김영희 교수는 1992년 9월 무용과에 부임하여 우수한 제자들을 다수 배출하고 재직 중 강의우수교원에 2번이나 선정된 바 있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 공동안무 지도위원등 주요한 행사 안무를 담당하고 활발한 국내외 공연을 전개하는 등 한국 창작무용계의 큰 별이었다. 1994년에는 제자들로 구성된 ‘김영희무트댄스’를 창단해 학생 한명 한명과 소통하며 교감하며 후학 양성에도 열과 성을 기울였다. 제자 은혜진(무용과 93졸)은 “비록 교수님은 떠나셨지만 단원들 모두 무트댄스에 남아 선생님의 뜻을 이어가기로 하였다”라며 스승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드러냈다. 예술의 꽃을 피우다. 故 김영희 무용과 교수이런 제자들의 스승을 기리는 마음들이 모여 5월 28~29일(금) ECC 이화.삼성홀에서는 무트댄스의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다. 본 공연에는 고인이 1983년 처음으로 안무한 작품인 나의대답Ⅰ을 비롯한 대표작이 선보였다. 공연에 참여했던 故 김영희 교수의 제자들은 “생전 교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며 “제자들이 각자의 ‘무트댄스’로 작품 활동을 펼치길 바라셨던 것처럼, 앞으로 단원들의 기량을 각자의 예술세계로 펼치며 교수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제자들 가슴에, 또 그들이 이어갈 무용단을 통해, 그리고 사랑했던 학교, 춤, 제자를 위해 이화에 큰 사랑을 남긴 故 김영희 교수. 그녀가 사랑했던 제자들과 이화는 故 김영희 교수의 예술가, 교육자로서의 끊임없는 도전, 노력, 헌신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삶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국문 86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06-01 조회 2021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국문 86졸)는 코로나19 극복 긴급 모금이 시작되자마자 “코로나19로 모든 분들이 어려워져 매우 가슴 아프다. 정규직은 물론, 단기 파트타이머 일자리조차 찾기가 힘들다니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나 생활이 힘들겠는가.” 라며 5천만 원을 기부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기부를 결정했다는 이진민 대표는 전달된 기부금이 학생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누릴 수 있도록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삶지속적으로 나눔과 기부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저에게 주어짐에 있어 한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가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잠깐 통로로 쓰시기 위해 저에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족하지만 제가 그 통로로 쓰일 수 있음에, 누군가에게 기쁨을 나눌 수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또한 저에게 나눔 활동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기도 합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고, 직장에 취직을 하고, 또 저의 브랜드를 운영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 사회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앞으로 살아 나가면서 꾸준히 갚아야 할 빚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삶을 통해서는 물론, 운영하고 있는 사업을 통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삶의 지평을 확장 시켜준 이화여성이어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 사회적 억압을 뒤로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곳이 바로 이화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지평을 넓혀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의 기초를 이화가 마련해주었습니다.저는 제가 가는 곳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아마 많은 이화 동창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 저 때문에 혹시나 후배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잘해 놓아야 후배들의 환경이 좋아지고, 결국 그게 내 딸의 환경이 좋아진다는 생각이었어요. 지금 제가 여성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하는 것도 이화에서 다진 가치관이 기저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일겁니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그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코로나19’가 유행처럼 번지며 우리 청년들의 생활과 심적인 부분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대단한 우주이자, 새로운 세계라는 것’,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 받을 이유가 충분하며,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에요. 우리 학생들이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보다 자신을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사회적 역할에서 오는 기대감에 꺾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꿈을 위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최근 우리 학생들이 금수저·은수저를 언급하며 스스로를 제한하는데, 절대 인생은 그것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현실의 어려운 상황에 집중하기 보다는 어려워도 극복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이 길이 닫히면 저 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갖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부르심, 나눔으로 응답하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이명경 총동창회 부회장(무용 77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03-26 조회 2001 젊은 시절 이화에서 받은 사랑을 아름답게 갈고 닦아 다시 이화에 소중한 마음과 후원을 배로 나누고 있는 이명경 총동창회 부회장. 그녀가 발견한 인생의 아름다움은 ‘나눔의 기쁨’이다. 이명경 총동창회 부회장(무용 77졸/석사 86졸, 신학대학원 01졸)은 이화를 향한 한결같은 기도와 봉사뿐만 아니라 후배를 위한 장학금으로 때로는 학교발전을 위해 이화에 도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물심양면으로 모교를 후원해왔다. 또한, 2020년 이화미래전략기금 추가 후원을 통하여, 이화 모금사업에 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후원자에게 자격이 부여되는 이화아너스클럽 회원으로 위촉되었다. 늘 이화를 위해 헌신 해주셨습니다. 부회장님께 이화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신앙이 일상이었기에 학교 다닐 때는 예배가 있어서 좋았고, 학교 분위기와 일상이 이어져서 물 흐르듯 편했습니다. 모교를 떠나서 바깥 생활을 해보니 이화의 품에서 청년의 때를 보낸 일이 더욱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시간을 바탕으로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화가 있어 하느님의 정신이 제 삶에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제게 이화는 삶의 연속이자 삶과 이어지는 일상의 흐름이랄까요? 항상 저를 이화로 이끄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총동창회 부회장직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모양 저 모양의 사역을 하고 있던 중이라 완곡하게 계속 사양했으나, 권면하시는 선배님께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이제는 모교를 위해서 기도할 때라고 말씀하셨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 다시금 부르심을 받아 모교 이화와 동창회를 위해 기도하고 섬길 수 있어 기쁩니다. 이화를 위해 기도뿐 아니라 나눔도 열심히 하셨는데, 부회장님께 나눔이란 어떤 의미일까요?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 등록금으로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원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있어서 지금까지 작으나마 장학금을 나누고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일도 드러낼 일도 아닌지라 인터뷰 하는 것이 참으로 민망합니다. 이렇게 나눔을 이어갈 수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무용과를 졸업하셨는데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무용과를 졸업하고 이화의 교정을 떠나 타교에서 강의했습니다. 그러다 이화에서 드렸던 예배무용 채플을 떠올렸고, 제자들과 함께 ‘나눔터’라는 이름의 예배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학적 뿌리 없는 사역에는 늘 갈급함이 있었고, 때마침 이화에 신학대학원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1기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채플에서 예배 무용을 본 기억이 납니다. 처음으로 접한 무용 채플이 아직도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데, 혹시 채플 예배 무용에도 참여하셨나요?모교 채플에 예배무용이 올려졌던 초창기에 살짝 도움만 드렸습니다. (웃음) 예배무용을 지속하고 있는 이화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화와 후배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지극하게 느껴집니다.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제 청년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 여유와 여백을 가지세요. 청년의 때는 안과 밖의 기운이 넘치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분주합니다. 그렇게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 불현듯이 불확실한 미래로 숨이 막힐 듯 힘들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씨줄과 날줄로 순조롭게 엮여 있다고 믿었던 관계들이 비교의식이나 경쟁심으로 어그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잠시 머물러 자신을 성찰해 보는 여유와 여백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 주어진 일을 기쁘게 하세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참으로 소중한 가치관이라고 여겨지기에 정직하고 최선을 다하되 무엇보다 기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셋,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마음껏 사랑하세요. 사랑하는 우리 후배들이 이화의 교정에서 모든 생명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후회 없이 마음껏 사랑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가장 유의미한 때를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마음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열정과 긍정의 메시지, 이화에 오롯이 영원히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한소엽 교수(화학·나노과학 전공) 첨부파일 0 작성일 2020-03-25 조회 2195 작년 가을 작고하신 화학·나노과학 전공 고(故) 한소엽 교수(화학과 학부 80, 대학원 83졸)의 유족이 평생 이화와 이화 학생을 사랑하고 헌신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1억 원을 기부하였다. 고인의 유산으로 조성된 기부금은 화학·나노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소엽 연구격려장학금’으로 명명되어 화학·나노과학전공 후배들을 위해 쓰여진다. ‘한소엽 연구격려장학금’은 이화의 후배들이 여성 과학자로서 우뚝 서기를 바랐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학생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본교 장학기준을 충족하는 화학·나노과학 전공 박사과정 진학생 전원에게 지급되며 선발은 1년 2회, 장학금 지급은 입학하는 첫 학기에 이루어진다. 제자들에게 환한 미소의 열정적인 스승으로 기억되는 고(故) 한소엽 교수는 제자인 동시에 후배인 학생들이 ‘스스로를 믿고, 원하는 일에 열정을 다해,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길’ 바랐다. 아낌없는 가르침과 사랑을 베풀었던 고인의 열정은 ‘한소엽 연구격려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화에 사랑과 희망을 남기고 떠난 고(故) 한소엽 교수는 고인이 남긴 소중한 뜻이 닿은 모든 이의 가슴속에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고(故) 한소엽 교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던 열정의 소유자였다. 세 차례나 강의우수교원에 선정된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을 위한 정성과 노력은 대단했다. 2018년 강의우수교원 상패수여식 사진에서 보이는 더없이 환한 미소의 그녀는 여전히 활기차고 당당한 모습 그 자체였다. 교수님을 그리워하며... 고(故) 한소엽 교수는 사랑하는 이화의 학생들에게 매사에 열정적인 가르침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롤모델이었다. 또한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가리지 않고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제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녀의 제자들은 그 버팀목을 대체 불가한 열정, 긍정, 당당함이라는 세 단어로 기억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슴속에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의 백년대계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전희영, 전희송(의학 87졸) 자매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2-19 조회 2392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합니다. 1년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10년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 교육을 통해 아버지의 백년대계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두 딸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EGPP장학금으로 기탁한 전희영, 전희송(의학 87졸) 자매입니다. 두 분이 EGPP전찬화장학금 각각 5천만원씩 총 1억원을 기부하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희영_아버지가 이화여대에서 1998년도에 은퇴하신 전찬화 심리학과 명예교수이세요. 작년 10월에 돌아가셨으니까 꼭 1년이 되었네요. 저희 자매에게 작은 유산을 남겨주셨는데,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유산을 값지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화여대에 장학금을 후원하게 됐어요. 늘 이화를 사랑하고 후학 양성을 위해 애쓰셨던 아버지의 바람을 이화의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거든요. EGPP장학금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전희송_아뇨. 전혀 몰랐어요. 아버지 성함을 넣어 그 뜻을 기릴 수 있는 장학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혜숙 총장님께서 EGPP장학금을 후원하라고 권해주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3세계 여성인재를 키우는 전액 장학금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요. 전희영_아버지도 전쟁 직후 매우 어려운 시절에 미국 텍사스로 유학 가셨는데 다행히 학과 여교수님의 도움으로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귀국하신 후에도 편지도 하고 우리들 옹알이도 녹음해서 보내시면서 인연을 이어오셨는데, 나중에 그 교수님이 돌아가실 때 아버지한테 유산을 남겨주실 정도로 각별하셨다고 해요. 생면부지의 미국 여교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신 것처럼 아버지의 유산이 다시 제3세계 여성인재를 키우는 장학금으로 쓰이게 되어 매우 기쁘고 뜻깊게 생각합니다. 두 분 교육자의 정신적 유산이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거네요? 전희영_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적 유산이 계속 이어지게 되다니 참 감동적이에요. 앞으로 아버지의 장학금을 받은 EGPP장학생도 쑥쑥 잘 성장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교육의 기회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람을 심고 키우는 교육의 대물림이야말로 아버지, 전찬화 교수님이 꿈꾸셨던 진정한 백년대계가 아닐까요? 전찬화 교수님은 어떤 아버지이셨나요? 전희송_천상 학자에 선비셨죠. 마르고 단호하고 그러면서도 참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그 시절에는 남아선호가 강했을 때지만 아버지는 우리 두 딸만 낳고 세상 전부인 것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셨어요. 인터뷰에 앞서 전찬화 교수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에피소트 하나를 알게 됐어요. 1952년 6.25 전쟁이 한창인 어느 날 부산의 이화여대 피란 교사에서 ‘이화 문학의 밤’이 열렸는데 전쟁의 시름을 잊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해요. 그 날 양명문 시인이 훗날 국민가곡이 된 자작시 ‘명태’를 낭송하고, 근처 서울대 임시 교사에 다니던 교육학과 동기 남학생 3명은 초대장이 없어서 천막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몰래 ‘명태’를 들었다고 하는데요, 재미있는 건 나중에 그 남학생들이 모두 이화여대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희영_하하! 저 그분들 모두 잘 알아요.(웃음) 황응연(교육심리학), 김재은(교육심리학) 교수님, 그리고 저희 아버지 이렇게 세 분 교수님이시죠? 이화와 인연이 되시려고 그렇게 몰래 청강하셨나보네요.(웃음) 아버지 절친 분들이시라 그분들 자녀하고도 무척 친해요. 같은 초등학교 다니며 언니 동생하는 사이고 친구 아버지들이시라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어요. 두 분께 이화란? 전희영_어릴 때 이대 후문 쪽 봉원사 아랫집에 살면서 이화유치원과 이대부초를 다녔어요. 대학은 카톨릭 의대를 나왔지만 이화는 제게 고향처럼 푸근하고 동네 놀이터 같이 즐거운 곳이죠. 이화 안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했던 추억이 참 많아요. 전희송_저는 대학까지 이대 의과대학을 나와서 뼈 속까지 이화인이랍니다. 어릴 때 성탄이 가까울 무렵이면 집에서 총총 걸어 나와 대강당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봤던 기억이 생생해요. 꽃피는 봄이면 본관 앞에서 가족사진도 많이 찍고, 또 눈 오는 날이면 대강당 옆 비탈길에서 썰매도 많이 탔고요. 아버지가 평북 강계 출신이시라 눈을 참 좋아하셔서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화 캠퍼스로 온 가족이 출동했었죠. 추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화는 제게 늘 아버지와의 추억이 생생히 살아있는 곳이죠. 글_김효정 보자기로 엮는 인생수업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이성순 명예교수(섬유예술전공)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2-11 조회 2409 늦가을이 물든 이화교정에서 이성순 명예교수(섬유예술전공)를 만났다. 까만색 롱코트와 하얀 블라우스, 수공예 스카프로 멋을 낸 그녀. 7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멋짐을 발산하고 있었다. 늘 멋지신데,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첫째는 제게 어울리는 옷을 즐겨 입어서 그리 보이는 걸 거예요. 이 검정 코트는 제자가 선물해준 옷인데 30년도 넘은 아주 오래된 거죠. 그동안 몸이 불어서 여며지지도 않고 안쪽 솔이 헤질 정도로 낡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이라 오랫동안 즐겨 입고 있어요. 둘째는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나다움을 찾고 나답게 입으려는 고집이 제 스타일을 만든 결과인데,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1세대 섬유예술가로 유명하신데.어려서부터 바느질을 잘했어요. 다림질과 재봉에도 재주가 있었고요. 50년 넘게 해 왔으니까 섬유예술은 제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제가 섬유를 택한 건 제 말을 가장 잘 듣는 게 섬유였기 때문이에요. 친근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제가 깜박 속았습니다.(웃음) 50년 해보니 느끼는 건 말을 잘 듣는 척하지만 실제로 무척 예민하고 다루기 어려운 것이 섬유더라고요. 세월이 더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져요. 섬유예술 1세대로서 책임감도 느끼고요. 한국 보자기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전 세계에 알리신 걸로 알고 있어요.처음에는 순수예술로서의 섬유예술을 했었어요. 그러다 2000년에 모교이기도 한 시카고예술대학에 연구년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계 예술시장의 큰 변화의 흐름을 보고 한국에 돌아와서 선택한 것이 보자기였어요. 우리 보자기를 세계적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거죠. 그때부터 제자들과 함께 보자기를 활용해 연구하고 만드는 작품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2010년 시카고예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까지 받게 됐습니다.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이라고 하네요.그러나 여전히 할 일이 남았습니다. 우리나라 10명의 보자기 작가들을 선정해 세계 속으로 나간다고 선언했는데 아직도 그 숙제를 못했으니까요. 이제 그 숙제를 마저 할 계획이예요. 왜 하필 보자기인가요?제가 보자기작품으로 다루는 재료는 모시인데 모시의 특성은 투명함에 있어요. 저는 그 투명함이 참 좋아요. 작품이든 일상생활이든 또 사람에게도 투명에 진실이 있듯이 섬유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은 재료라 생각합니다. 또 모시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햇살을 가득 머금어서 참 따뜻해요. 흰 모시를 조각조각 붙여서 작품을 만드는 일이 우리 인생과도 닮았습니다. 서로 다른 일상의 파편이 모여 하나의 인생을 완성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지요. 그리고 보자기는 매우 유용한 소재예요. 제가 예술작품을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공예가이기에 실제로 전시했던 작품을 집에서 커튼이나 식탁의 러너로도 사용하고 있지요. 최근 이성순장학금 7천만 원을 후원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제가 2008년에 은퇴할 때 당시 퇴직금의 반인 3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후원했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좀 더 할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러다 얼마 전에 제가 50년 살던 건물이 재개발되는 바람에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목돈이 생겼지 뭐예요. 아싸, 기회다 싶었죠.(웃음) 7천만 원을 보태 이성순장학금 1억 원을 완성했습니다. 해묵은 숙제를 마치고나니 어찌나 시원하던지...! 저의 인생 숙제를 흔쾌히 도와준 남편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나에게 나눔이란?매일매일 해야 하는 인생 숙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용돈 주시면 교회에서 헌금했어요. 그냥 당연한 일상 같은 거였죠. 헌금해본 사람은 알거예요. 내 손에 쥐고 있는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것을요. 후원자로서 보람을 느끼는 점이 있으시다면?올해 처음 조형대 장학생의 편지를 받았어요. ‘매번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재료비 대기가 힘들었는데 올해는 그런 걱정 없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어 정말 좋다. 최고의 졸업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글을 읽고 정말 감동했어요. 사실 조형대 학생들은 등록금보다 재료비 걱정이 더 크거든요. 나의 작은 도움이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이화에서 배운 사랑과 감사를 후배들을 위해 다시 돌려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화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우리 이화의 졸업생들이 더 적극적이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았으면 해요. 크리스천으로서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나를 보고 그 길을 따라 살았으면 합니다. 바르고 당당하게, 그러나 교만하지 않게, 더불어 나누며 사는 이화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_김효정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채우는 일상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박하영 동문(약학 77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09-30 조회 2303 이화에는 사랑과 나눔의 리더, 이화아너스클럽이 있다. 이화아너스클럽은 이화발전을 위해 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2012년에 발족한 고액 기부자 클럽이다. 지금까지 291명이 이화아너스 회원으로 위촉되어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최근 이화아너스클럽에 이름을 올린 박하영 동문(약학 77졸, 전 약학대학동창회장). 그녀를 만나 아너스 회원이 된 소감과 기부철학에 대해 들었다. - 이화아너스클럽 회원이 되신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이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화 발전에 작은 부분이나마 기여하게 된 것도 기쁘고 감사한데, 아너스클럽 신규회원이 되었다니 큰 영광입니다. 1996년부터 20년 넘게 꾸준히 모교 후원을 이어오다 보니 덤으로 이런 영예도 누리네요. 이화아너스클럽에는 우리 사회와 모교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훌륭한 분들이 참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이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어 매우 기쁘게 여기고 있어요. - 약대건축기금과 약학대학1060장학금 등 주로 약학대학 후배들을 위한 기부를 많이 하셨네요?제가 2015년에 약학대학동창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모금 활동을 시작했어요. 솔선수범해야하는 자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부를 적극적으로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약대가 통합6년제로 바뀌면서 연구시설 투자와 낙후된 시설개선이 필요해서 동창회 차원에서 약대건축기금을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약학대학1060장학금은 한사람이 10만원씩 60개월을 모아 후배에게 한 학기 장학금을 후원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어요. 뜻이 참 좋은 캠페인이라서 우리 약대뿐만 아니라 이화대학 전체에 1060장학금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학교에 삼정장학재단장학금 4천만 원도 후원하셨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현재 남편이 제약회사 다림바이오텍을 운영하고 있고 39년동안 약업인의 길을 걸어 왔어요. 2002년에는 후학양성을 위한 삼정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되었고 장학재단 건물에 ‘카페루치아’를 운영하여 수익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루치아는 라틴어로 ‘빛’이라는 뜻이에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빛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죠. 제가 평소 모아두었던 소품들을 집에서 가져다 꾸몄는데 카페 후기를 보니 유럽풍의 멋쟁이 할머니 집에 놀러온 것 같다고 하더군요.(웃음) 제가 직접 커피도 내리고 설거지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하고 있어요. - 나에게 나눔이란?‘기쁨’이지요. 저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바로 나누는 삶이 아닌가 합니다. 나 혼자 잘되면 행복하나요? 우리 모두가 잘되어야 행복하지요. 두루두루 주변을 살피면서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잘사는 삶’ 아닐까요? - 요즘도 이화 캠퍼스에 자주 방문하신다고요?이화 ALPS(정책과학대학원 여성최고지도자과정) 수업 듣느라 20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등교하고 있어요. 저는 제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가 ALPS라고 생각합니다. 마흔 한살에 처음 ALPS에 들어와서 좋은 인생 선배들을 만나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사랑하는 법 그리고 최고의 매너를 배웠거든요. 감았던 눈이 떠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랄까요?(웃음) 제가 열심히 전도한 덕분에 큰동서와 시누이도 우리 이화 ALPS 동문이 되었답니다. -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있으시다면? 그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어린모’요(^^). 이화 ALPS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한 선배님이 저한테 어린모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어요. 처음엔 대학원생처럼 풋풋한 ‘어린모’였는데 이제는 세월을 먹고 자라 언니들 먹여 살리는 ‘벼’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농반진반 말씀하세요. 저 역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전히 노력중이랍니다. -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왜 나만 이리 힘들까 생각하기보다 ‘첫째, 어려움은 지나가는 것이다. 둘째, 내려가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긍정의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으면 해요. 그러다보면 방법도 생기고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더라고요. 또 어려움이 없을 때는 자만하지 말고 평소에 기도로써 저축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해라! 범사에 감사하라!" 는 성경 말씀처럼 일상을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채우다보면 여러분의 삶이 저절로 충만해짐을 느낄 거예요. 글_김효정 이화해피펀드 장학생의 핀란드 교환학생 체험기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정승은 장학생(사회교육 16학번)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09-26 조회 2210 이화해피펀드는 재학생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학생복지기금입니다. 이화해피펀드에 많은 이화인들이 동참해주신 덕분에 지난 2018학년도 2학기에 재학생 2명이 항공료와 현지생활비 1.000만 원을 이화해피펀드에서 지원받아 미국과 핀란드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습니다. 멋진 교사를 꿈꾸며 공교육의 나라, 핀란드를 다녀온 정승은 장학생! 그녀의 교환학생 체험기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재학 중인 16학번 정승은입니다. 저는 지난 3학년 2학기, 6개월 동안 핀란드의 투르크(Turku)라는 도시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이화여자대학교 해피펀드 장학금을 받아 사범대학생으로서 꿈꾸던 교육의 나라, 핀란드에서 한 학기를 값진 경험들로 가득 채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공교육에서 질 높은 교육의 접근성을 높이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시키는 교사이자 교육정책가가 되고 싶습니다. 핀란드 교환을 지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가치들이 잘 반영된 공교육시스템을 직접 경험하고, 예비교사로서 제 스스로의 교육관을 정립함과 더불어 한국의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핀란드에서의 한 학기는 이러한 제 학업적 호기심을 여러 방면에서 채워준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핀란드의 “Flexible Study Rights”를 통해 두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는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 핀란드 북부지역에 사는 사미족과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국민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저는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오보 아카데미 대학교(Abo Akademi University)와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투르크 대학교(Turku University)에서 수학했습니다. 두 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은 핀란드를 더욱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투르크 대학교에서는 주로 핀란드의 교육을 알아볼 수 있는 수업을 위주로 들었습니다. “The Finnish Education System”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핀란드의 교육시스템이 형성된 배경을 이해하고, 현지 학교 다섯 곳을 방문학습(School Visit)하며 교육현장에서 교육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본 핀란드 교육시스템의 근간에는 각 학생의 필요한 정도에 따라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형평성(Equity)”이 뿌리 깊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다양성(Diversity)을 인정하는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을 각 교실에 배치된 일반의자, 빈백, 회전의자 등 여러 종류의 의자들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Intercultural Team Building”과 “Multicultural Education”이라는 과목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과 교류하며 학생들이 “다름”에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른 문화의 학생들과 여러 주제에 대한 다방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교사는 이러한 차이들을 어떻게 풍부한 학습 환경으로 이끌어야할지 그 교육적 방안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보 아카데미 대학교에서는 이러한 교육시스템의 기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는 핀란드 및 북유럽의 민주주의와 복지 시스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한 교수님의 설명 중에 북유럽의 공고한 사회안전제도를 잘 반영하는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었는데 바로 “Happy Taxpayers”입니다.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내지만 비교적 투명하게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있고, 그 세금의 사용처가 교육과 복지 등 사회안전망을 든든히 하는데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는 구조를 보며 민주주의와 사회의 다양한 부분의 밀접한 연관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회의 소수집단에 대한 태도와 시각을 연구하는 수업을 들으며 세계 곳곳의 사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학업적 측면 외에도, 핀란드 교환 생활 중에 다양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즐겁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오보 아카데미의 “튜터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핀란드 친구와 6명의 다른 교환학생들과 한 학기동안 한 그룹이 되어 여러 문화교류 활동을 했습니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하는 metsästäjä부터 겨울에는 핀란드 겨울음료인 Glögi를 마시며 핀란드의 문화체험을 함께 하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초대해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서 파티를 하는 포트럭 파티도 자주 열었습니다. 또, 수업에서 친해진 친구들과는 근교 여행을 다니며 핀란드의 진면목을 함께 찾아다녔습니다. 가을에는 투르크 국립공원에 가서 버섯따기 체험도 하고, 겨울에는 라플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함께 보기도 했습니다. 두 시간 거리인 헬싱키를 비롯한 핀란드의 여러 도시들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며 핀란드의 색다른 모습들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며 가장 좋았던 점은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외국인 교환학생으로서 핀란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었고, 또 공공외교관이 되어 한국을 소개하는 입장일 때도 있었으며, 23살 청춘으로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거나 실없는 농담을 나눌 때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제 생각의 지평이 많이 넓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대화를 나누며 친해진 친구의 추천으로 2년마다 노르웨이의 트론하임(Trondheim)에서 개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학생 학술축제를 알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ISFIT(International Student Festival in Trondheim) 2019’에 전액 장학생이자 한국대표로 참가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이주(Migration)’이라는 큰 주제에 대해 10일 동안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비롯한 전 세계 석학 분들의 강연을 듣고, 다양한 장르의 문화공연을 관람하며, 전 세계에서 모인 500명의 학생들과 토론하는 등 하루하루가 학술, 문화교류, 네트워크 빌딩이 총집합된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다른 참가자들과 대화했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건 미디어나 책 등 어디서도 접할 수 없는, 대화로서만 가능한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의 학술축제를 통해 많은 귀중한 경험을 얻었지만, 그중에서도 저만의 교육관을 하나 더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뜻깊었습니다. 바로, 학생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대화를 통해 서로 배울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의 저는 예전보다 꿈이 많아졌습니다. 6개월 동안 핀란드 교환생활을 통해 제가 꿈꾸었던 교육자의 모습에, 한국 교육의 모습에 더 많은 빈칸들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6개월 간 배웠던 모든 것을 온전히 담아 앞으로 이 빈칸들을 채워나갈 때 유용하게 꺼내 쓰며, 새로운 도전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된 핀란드 교환생활을 가능하게 해주신 이화여자대학교 장학 관계자분들과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이런 선물 같은 기회를 주시는 해피펀드 후원 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나눔의 손길을 항상 잊지 않고, 제가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화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넓은 세상을 선물합니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김미경 동문(특교 86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07-30 조회 2297 김미경 동문(특교 86졸)이 특교86김미경장학금 1,000만원을 후원했다. 졸업 후 한 번도 모교와 접속한 일이 없다는 그녀는 ‘열심히 공부하지만 형편이 덜 어려운’ 특수교육과 1명과 영어교육과 1명을 선발해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도록 후원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항공료를 걱정하는 장학생 한명에게는 흔쾌히 항공료 100만원을 추가 지원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선물하고 싶다는 김 동문을 이메일로 만나봤다. - 누구나 여유가 생기면 후원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학교 후배들을 위해서 장학금을 후원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평소 저희 부부는 남을 도우면서 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삼남매를 어느 정도 키워 놓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몇몇 기관에 기부를 해왔으나, 그 기관에서 우리의 의도와 일치하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어요. 시아버님께서 생전에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어려운 학생들을 돕겠다는 꿈이 있으셨는데 일찍 운명하시면서 실천을 못하신 것이 있어 저희 부부가 직접 장학재단 설립을 알아보기도 했는데요, 개인이 장학재단을 설립하기에는 과정도 복잡하고 규정도 많아 포기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모교에 장학금을 후원하면 보다 쉽게 후배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부를 결심하게 됐어요. - 보통 장학기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쓰이길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별히 장학금을 해외연수비로 써달라고 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장학금은 보통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경우가 많아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형편이 어렵지 않은’ 범주의 학생들이 오히려 장학금을 받기 어렵지 않나요?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실, 저희 7남매 중 4명이 모두 대학생이어서 부모님께서 힘들어 하셨는데, 대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도 법적으로 금지됐던 시절인데다 일반 아르바이트(당시에는 편의점도 없는 등 아르바이트 업종 자체가 드믈 때!) 자리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우선이라 저희 형제들은 부모님을 금전적으로 도와드릴 방법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제가 4학년 2학기 때 성적우수자에게 주는 이화장학금을 받게 됐는데, 이 소식에 너무나 기뻐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마 일생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칭찬 중에서 가장 큰 칭찬을 그때 받지 않았나 싶네요(^^).요즘도 저와 같은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었어요. 학비는 어찌어찌 해결하더라도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틈새에 놓인 후배들이 있을 거라고요. 그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생존 수단인 영어를 현지 유수의 교육 기관에서 배울 수 있는 어학연수 기회를 지원해 주는 일이 가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번에 선생님의 후원을 받아 특수교육과 1명과 영어교육과 1명을 선발하여 여름방학 때 아일랜드와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들 장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하하,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을 전달 부탁드려도 될까요? 국내에서만 받아 온 교육 방법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교육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각기 다른 나라의 학생들의 겉모습과 행동, 생각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도 배웠을 거고요. 서양인들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일찍 성숙해지고 부모로부터 심리적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하는 면도 눈에 보였을 테고 저희보다 왜 선진국민이라는 말을 듣는지도 알게 됐을 거예요.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전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고요, 그들의 장점은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장점을 살려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좀 더 발전한다면, 그리고 영어 실력이 향상되었다면, 그래서 사회에서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다면 저의 소기의 목표는 이루어졌다고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너무 많은 초·중·고교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꿈이 없어요. 아마도,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서 감히 용기를 낼 힘이 없어서인 것인지, 주변에 롤 모델이 될 만한 어른을 찾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절박하게 배고픈 적이 없어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욕 자체가 없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앞으로 교사가 되어 학생들 지도할 때 직접 경험한 해외의 더 넓은 세상을 전달해 주어 미래세대가 더 큰 꿈을 꾸도록 지도하는 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 특수교육과와 영어교육과 이 두 과의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시게 된 동기가 있으신가요?두 과 모두 제가 감사와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영어교육을 부전공했는데 제게 매우 잘 맞는 분야여서 자부심이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해외 근무하는 부모님을 따라 멕시코시티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모국인 수준에 근접하는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에 선진국에서 이미 특수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고, 아버지께서는 제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특수교육이 유망해질 거고 성격도 맞을 거라고 권유하셔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미 본토에서 익힌 영어 실력 또한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 부전공으로 영어교육을 선택하게 되었고요. 결혼 후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포항에서 큰 아들, 군산에서 둘째 아들, 그리고 포스트닥터로 미국에서 지낼 때 막내인 딸을 출산하여 3남매를 모두 연고 없는 곳에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포스트닥터일 때랑 교수 안식년일 때 미국의 공립 초·중·고교의 ESL 학급 시간제 도우미를 하면서 다양하게 발전하는 영어교육 현장 경험도 했지요. 군산에서 90년대 중반부터 제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영어지도를 하고 있는데요, 시작 당시 군산에서는 특수교육 교수법을 가미한 선도적인 영어 교수법으로 열악했던 영어회화 분야에 영향력을 끼친데 대해 제 나름대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수교육과 영어교육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이 저의 인생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듯이, 이 두 분야를 전공한 후배들이 좀 더 넓은 시야와 탄탄한 실력을 가진 교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함입니다. - 나에게 이화란? 늘 그리운 곳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꿈이 크고 에너지가 넘쳤을 때, 활동적으로 다닌 대학교입니다. 1학년 입학하자마자 과 부대표로 뽑혀서 열심히 뛰어 다녔어요. 1학년 2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과대표로, 그 후 졸업할 때까지는 특수교육학회 학생 간부로 늘 뛰어 다녔습니다. 졸업 이후엔 가보고 싶어도, 때로는 대학원이이나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도 늘 있었지만, 서울을 떠나 삼남매 키우며 살림하며 일까지 하면서는 모교 방문 자체가 힘들어서 잘 못 가는 곳이니까요. - 기부에 대한 나름의 소신이 있으신가요? 기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돌아오는 것이 다양하고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어요. 대학교수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연고도 없는 군산에서 혼자 3남매를 키우면서 일하는 것 자체가 벅차고 힘들다 보니, 제 가족도 건사하기 힘든데 밖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 위선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아이들 학교 봉사활동만 겨우 시간 내어 최소한으로만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운영하는 영어교습소에 월드비전에서 전화가 왔어요. 월드비전 소속 어린이들에게 영어교육 봉사를 해줄 수 있냐는 전화였죠. 당시 이 지역에서는 어린이 기초 영어 교육의 체계가 덜 잡혔을 때라 제가 특히 기초교육에 전문화된 어린이 영어지도를 한다는 것을 수소문 끝에 알게 되어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살짝 고민은 됐지만, '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좋은 일 한 번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스쳐서 바로 하겠다고 응했지요. 그리고 딱 1년 간 성실히 지도를 했는데, 1년 후에 봉사로 인한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갖고 있는 것을 조건 없이 선의로 베풀면 그에 대한 축복이 반드시 오는구나!’라고요. 그리고 그 선한 도움은 선하게 잘 전달되어 향기로 퍼져 나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또 그 선한 향기를 퍼뜨릴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요즘의 후배들은 저희 때에 비하여 훨씬 다양하고 깊게 공부하고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화의 후배들은 스스로 잘 알아서 해내는 학생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많은 인구수에 비해 비좁은 국토에 밀집되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이 매우 심하여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시야가 좁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만,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젊은 시절에 흘리는 땀은 매우 값지게 되돌아 올 것임을 믿고, 좌절하지 말고 더욱 더 매진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는 공해, 토양 및 해양오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질병도 많아지고 있어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신체가 건강하여야 하고, 신체가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해지는 바, 자신의 몸을 좀 더 사랑하고 소중히 대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성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선한 향기와 품격을 지닌 자랑스러운 이화인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함께 안아 흐르는 물처럼 더 너른 이화로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남상택 총동창회장(물리 74졸)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07-25 조회 2059 남상택 동문(물리 74졸)이 2019년 3월 9일(토) 이화여자대학교 총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제18대 신임 총동창회장으로 선임됐다. 남상택 동문은 1974년 본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부터 2005년까지 모교 물리학과 강사로 활동했다. 자연과학대학 동창회장과 총동창회 감사, 진명여고 총동창회장, (재)진명100주년장학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선정 ‘자랑스러운 물리학과 동문상’(2015년)을 수상한 바 있다. - 제18대 총동창회장님이 되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솔직히 어깨가 무겁습니다. 23만 명 이화동창을 대표하는 자리이니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동창회의 여러 직책들을 맡아보면서 총동창회장이라는 직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명예보다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 바쳐 헌신과 소명으로 일하는 자리라는 것을요. 그래서 제가 극구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라고 고사를 했더니 선배님들께서 “죽었다 생각하고 하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꼼작 없이 중책을 맡게 되었죠.(웃음) 다행히 많은 분들의 기도와 응원 덕분에 무사히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총동창회가 많은 분들의 사랑과 열정의 결실임을 기억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총동창회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 총동창회장님께 이화는 어떤 의미인가요?저에게 이화는 ‘숲이 우거진 큰 산’입니다. 물리학과 학부와 석사를 거쳐 강사생활을 20여년 하면서 캠퍼스의 변화를 지켜봤죠. 학생문화관 자리에 있던 구 건물에서 현재 자연과학대학 건물로 이사할 때는 물리학과 실험기구 등 이삿짐을 싸고 나르기도 했어요. 이화는 제 영혼의 큰 산과도 같습니다. 숲속을 거닐다가 소중한 열매를 얻듯이 이화라는 깊고 푸른 숲속에서 삶을 지탱할 지식과 경험을 얻었으니까요. 넉넉하고 풍요로운 이화 품안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학창시절에 가장 생각나는 추억이 있으시다면?저는 1970년에 입학했는데 그때는 대학가에 시위가 이어져 휴교를 많이 했어요. 정의감이 넘치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나름 진리에 대한 갈증이 컸습니다. 물리학도였지만 인문학, 특히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철학수업 때 맨 앞줄에 앉아 공부할 정도로 열심이었답니다. 그때 깨알같이 필기했던 철학개론 스프링 노트를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통섭과 융합을 제가 좀 일찍 실천한 셈이네요. 그 당시 인간답게 살기 위한 탐구로 이어진 철학 공부는 지금까지도 제 인생의 든든한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 임기 동안 총동창회장으로서 추진하고 싶은 사업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총동창회는 매년 5월 31일 창립기념일에 ‘졸업 30주년·50주년 동창 재상봉 행사’와 ‘올해의 이화인’ 추대, ‘빛나는 이화인’상 시상을 진행하고 있고, 5월에 이화가족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 9월에 총동창회 대 바자회, 11월에 ‘이화인의 밤’ 개최와 ‘아름다운 이화인’상 시상 등 시기별로 굵직한 동창 행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화인’상은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을 위해 섬김과 나눔의 이화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동창에게 수여하는 상인데요, 동창들의 추천을 받아 시상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30일까지 ‘아름다운 이화인’을 추천받고 있으니 동창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기존 사업과는 별도로 제18대 동창회에서는 두 가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먼저 올해 하반기에 ‘올해의 이화인’ 기수별 연합 모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총동창회가 1991년부터 추대하기 시작한 ‘올해의 이화인’이 이제 1,000명을 넘어섰습니다. 매년 졸업 30주년이 되는 동창 중에서 과에서 1명씩 추대하는 ‘올해의 이화인’은 기수별로는 결속력이 강한 데 반해 전체 동창 네트워크로는 성장하지 못했어요. 전체 ‘올해의 이화인’ 간의 만남을 통해 동창회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졸업 50주년 이상의 동문 초청 행사입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졸업 50주년을 맞는 동창들의 참여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졸업 50주년 이상인 분들을 모두 초청해 이분들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자 합니다. - 솔직히 젊은 동창들은 총동창회에 대한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젊은 동창들의 참여 폭을 넓히기 위한 방안이 있으신가요?사회의 패러다임은 급변하고 있기에 동창회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일례로 올해 ‘올해의 이화인’을 추대하는 과정에서도 동창들이 ‘똑같은 한복을 꼭 입어야하냐’면서 이전과 다른 변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이화만의 고유한 전통도 살리면서 젊은 세대의 변화 요구도 발전적으로 수용해야하는 시점입니다. 앞으로 젊은 동창들의 참여 확대를 위해 자녀교육, 유산상속, 건강세미나, 전문직 동창소개 등 젊은 동창들에게 유익한 특강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또한 총동창회 홈페이지(www.ewhaalum.or.kr)와 SNS 등 네트워킹 활성화를 통해 보다 친근한 총동창회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총동창회를 선배들의 연륜과 지혜, 젊은 동창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 나중에 임기가 끝나고서 어떤 총동창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솔직히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은 주제넘은 듯 하구요, 그저 임기 후에 부끄럽지 않은 총동창회장이 되고 싶습니다. 항상 나중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총동창회장님의 인생 모토가 있으신가요?‘물처럼 살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직책을 맡아 힘들어할 때 한 선배님이 그러셨어요. 물처럼 거스르지 말고 아래로 흐르듯 살라고. 그때부터 제 좌우명이 됐어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면서, 작은 돌을 만나면 돌아가기도 하고, 큰 바위를 만나면 용기 있게 힘껏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물을 가리지 않고 함께 안아 흐릅니다. 그러나 줄기차게 흘러 결국 너른 바다에 이르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물과 같은 겸손과 포용력으로 동창 여러분들과 함께 더 큰 이화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노력하면서 가다보면 우리 이화만의 블루오션이 열리지 않을까요? - 총동창회는 지금까지 학교 발전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이화와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학교 발전을 위해 총동창회장님께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총동창회 회칙에 ‘모교의 발전에 적극 기여하며 회원 상호간에 친목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1908년에 발족되어 111년의 시간동안 모교와 동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이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매년 모교에 학교발전기금과 이대총동창회장학금을 후원하고 있으며, ECC나 기숙사 건축 등 각종 학교사업에 총동창회가 열심히 학교를 도와 모금사업을 해왔습니다. 모교의 발전이 곧 이화동창의 발전이고 이화동창의 발전이 모교의 발전이라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모교의 발전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 이화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총동창회에 가입할 수 있나요?학부와 대학원 졸업생이면 모두 총동창회의 정회원이 됩니다. 정회원은 의결권과 선거권, 피선거권을 가지며 회비부담과 회칙준수의 의무가 있습니다. 연회비는 3만원이고 평생회비는 50만원(60세 이상은 30만원)입니다. 연회비는 동창회보 발간, 모교 기부금, 장학금 등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 및 해외에서도 정회원이 30인 이상 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지회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든 이화여대 총동창회와 함께 하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총동창회 문은 항상 이화동창 여러분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 8층에 사무실이 있으니 편하게 찾아주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다양한 동창서비스와 동창회보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총동창회는 먼 미래를 생각하는 혜안으로 나아가는 길에 걸림돌이 있다면 꼭 필요한 디딤돌로 다시 바꿔 가면서 굳건히 걸어가겠습니다. 이화동창 여러분과 함께 더 큰 이화를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화’의 이름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밀알처럼 때로는 보석같이 빛나는 이화동창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는 자리가 끝없이 이어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글_김효정 알프스에서 울려 퍼지는 나눔 메아리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마희자 ALPS동창회 회장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07-09 조회 1636 ALPS는 1995년에 설립된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여성최고지도자과정이다. ALPS 3기로 입학하여 수료한 지 23년, 인생의 삼분의 일을 ALPS와 함께한 마희자 회장은 ALPS를 ‘알프스’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자신의 이야기보다 ALPS 동문들에 대한 자랑으로 들떴다. 마치 자식 자랑하는 엄마처럼 ALPS와 함께 배우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인터뷰 내내 유쾌하게 고백했다. 투게더, 함께하면 가능한 기적올해 ALPS동창회 회장에 선출된 마희자 회장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여 이화여대 여성최고지도자과정(Advanced Leadership Program Society) 활성화에 기여한 이화 ALPS의 산증인이다. 그런데 마 회장은 오히려 ALPS에 와서 ‘여성 봉사정신’에 눈을 떴다고 고백했다. 이화 재학생들을 위해 기획하게 된 ALPS 기증바자회만 해도 전적으로 회원 기증으로 진행하면서 몇 달을 준비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이다. 올해로 벌써 19회를 맞이한 이 기증바자회를 통해 지난 18년 동안 장학금으로 기부한 금액이 8억원가량 된다. “저 혼자였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어요. 함께할 사람들이 내 주위에 많이 있다는 걸 ALPS가 깨닫게 해주었죠. 같이 가는 ‘투게더’ 정신이요. 작은 힘이 모여서 큰 힘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ALPS입니다.” 마희자에게 물어보세요올해 마 회장이 기획한 ALPS 주최 자선패션쇼는 기부자가 직접 패션쇼 모델로 서는 독특한 콘셉트의 패션쇼이다. 패션에 관심 있는 여성들의 취향을 나눔과 연결한 것이다. 마 회장은 특히 ALPS 합창단의 활동을 강조했다. 결식아동·유방암 환자·루프스 환자·미혼모 돕기 등 국내 자선음악회뿐만 아니라 해외 교민 및 아프리카·캄보디아 돕기 등 해외 활동까지, ALPS 합창단은 국내외를 누비며 나눔의 노래를 부른다. ALPS는 이화를 위해서도 각종 장 학기금 및 건축기금을 지속적으로 기부해왔다. “솔직히 자선패션쇼 티켓 한 장 팔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ALPS 동문들은 나눔과 봉사라면 기꺼이 동참하죠. 오히려 이 정도밖에 못하는 걸 부끄러워해요. 천국에 갔을 때 착한 일 뭐 했냐고 물으면 ‘저는 기부하라고 시키는 대로 내서 잘 몰라요, 마희자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할 거라고 우스갯소리들을 해요. 이렇게 순수한 분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한 힘이자 큰 행복이에요.” ‘여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향한 꿈개인적으로도 꾸준히 이화를 후원해온 마 회장은 2018년 12월 이화미래전략기금으로 3천만원을 후원하면서 1억원 이상 후원한 기부자 모임인 아너스클럽 회원이 되었다. “ALPS에서 배운 나눔을 개인적으로도 실천하는 것뿐이에요. ALPS에서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지식과 통찰을 배웠고, 내가 서있는 자리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깨닫게 되었죠. 지인들에게 이화 ALPS 하자고 권하는데 요즘엔 아너스클럽 하라고 추천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답니다.” 이토록 이화 ALPS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 회장의 바람은 무엇일까? “ALPS가 더 활성화되어서 ‘여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더욱 앞장서 실천하며 더 많은 여성들을 후원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의 진달래빛 재킷 앞섶에 달린 하얀 배꽃 브로치가 이화 ALPS에 대한 마 회장의 사랑을 상징하듯 환하게 빛나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만든다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김순옥 정책과학대학원 동창회장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07-09 조회 1831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꿈이 있냐고 물었다. “제가 사실 체력이 옛날 같진 않아요. 그래도 우리 여성들의 능력을 제대로 펼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 남은 힘을 보태고 싶어요” 여성을 위한 그녀의 연대의식은 참으로 크고 넓다. 김 회장이 일구어낼 정책과학대학원 동창회의 변화가 자못 기대되는 이유다. 여성 CEO의 이정표를 만들다김순옥 동문(정책과학과 석사 19졸)은 우리나라 여성 CEO 1세대이자 여성정책 변천사의 산증인이다. 복사와 커피 심부름이 여성의 주업무였던 1970년 중반, 외국상사에서 선진화된 시스템과 비즈니스를 배운 그는 1980년에 텍스타일디자인 회사를 창업했다. 오늘날 중견 자동자부품업체의 대표가 되기까지 40년 동안 여성 CEO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80년대는 여자가, 그것도 결혼도 안 한 서른살 미혼여성이 사업을 한다는 건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여자가 사업한다고 하면 무조건 남편의 보증을 요구했어요.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도 극히 제한적이었고, 앞서 나간 선배들도 없었고요.” 그녀는 스스로 길을 만들기로 했다. “여성 CEO 기업은 환경적으로나 규모면에서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여성기업을 위한 정책 수립이 절실했어요” 김 회장은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이하 여경총)의 창립 멤버이자 제7대~10대 회장으로 9년간 여경총을 이끌며 여성기업을 위한 정책 제안에 발 벗고 나섰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많은 여성기업 정책들의 상당수가 여성경제인협회들의 작품이다. “일단 저를 위해서 열심히 뛰었고요, 후배 CEO들을 위해 이정표 하나 찍고 간다는 생각으로 열정을 쏟았어요. 금방은 안되더라도 제 안이 하나하나 정책으로 실현되면서 여성들의 지위와 권익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이 정말 보람 있고 즐거웠거든요.”여성 리더들의 필수 관문은?정책과학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정책과학대학원 동창회장을 맡은 김순옥 회장. 2018 년 12월에는 정책과학대학원발전기금 5천만원을 기부해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이화아너스클럽에 가입했다. “후원하게 된 계기는 단순해요. 첫째는 이화에 대한 사랑이고요, 둘째는 정책과학대학원이 능력 있는 여성리더를 더 많이 키워줬으면 하는 마음이죠.” 우리나라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꼴찌다. 여성임원 할당제를 제안하면, 관계 부처나 기업들은 임원 역할을 감당할 전문 여성리더가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고. 그래서 김 회장은 “우리 여성들이 리더가 되려면 그 자리를 감당할 능력을 스스로 갖춰야 한다”면서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이 임원급 리더가 되고 싶은 여성들이 꼭 거쳐 가야 할 관문”이라고 강조했다. 정책과학대학원 동창회장으로서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정책과학대학원이 올해로 21주년이 돼요.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동창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아직 동창회 조직은 미약한 편이에요. 기업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배들이 어느 분야, 어느 기업에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도록 네트워킹에 힘쓰려고요”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는 여성리더들의 동창회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 40여 년에 걸쳐 제안하고 부딪치고 관철시키며 스텝 바이 스텝으로 현실 을 변화시켜온 김 회장다운 다짐이어서 더욱 신뢰가 간다. 어머니 통장에 담긴 100년의 스토리 작성자 대외협력처 기부자명 곽삼근 교육학과 명예교수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07-09 조회 2020 “모든 기부에는 스토리가 있죠.” 촬영 중간, 곽삼근 교수가 읊조리듯 말했다. 2018년 5월, 곽 교수는 이화미래전략기금 1억원을 약정했다. 그 1억원에는 남다른 100년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할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어머니에게서 그에게로, 삶으로 감응한 100년의 기부 스토리. 여운은 묵직했지만 곽 교수의 눈빛은 밝고 목소리는 생기 넘쳤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뿜어내는 환한 에너지였다. 나의 할아버지, 나의 어머니2017년 8월 작고하신 어머니가 남기신 통장에서 곽 교수의 기부 스토리는 시작한다. 곽 교수의 조부는 독립운동가 곽대용 선생이다. 옥고의 후유증으로 해방 이듬해 돌아가셨고 매달 독립유공자 후손연금을 어머니가 받으셨다. 그런데 그 돈을 사사로이 쓸 수 없다는 어머니의 신념 하에 적지 않은 금액이 모아져 있었다. “통장은 제 관할은 아니었지만 ‘사회 환원’이라는 큰 정신적 유산을 받은 셈이지요.” 할아버지가 훌륭하게 사셔서 받은 것이니 우리 사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어머니의 유지는 곽 교수의 마음에 지진을 일으켰다. “7남매를 키우면서 엄마도 돈이 아쉬울 때도 많으셨을 텐데 시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차곡차곡 쌓아온 어머니의 삶의 흔적이 커다랗게 다가왔어요. 어머니 1주기 되기 전에 엄마가 할아버지를 기렸던 마음처럼 제가 이화에서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이화의 발전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결심했지요.”‘좋은 삶’을 꿈꾼다는 것여성평생교육학자 1세대로서 여성주의와 평생교육 분야에서 선도적 연구를 해온 곽 교수가 도달한 결론은 진학과 취직을 위한 교과 중심적 공부가 아니라 배운 지식을 토대로 사회에서 좋은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십대에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았나를 간접 체험하며 길잡이로 삼았으면 좋 겠어요.” 곽 교수가 이대 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도 한 권의 책이었다. 의사 아버지를 따 라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던 중, 고3 때 김활란 자서전을 읽고 ‘여성교육’에 눈을 뜨게 됐 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감행하며 이화여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이화인을 위한 책 추 천을 청하자 곽 교수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꼽았다.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 위의 세 차원으로 구분하는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자기 존재가치를 발휘하며 살면 좋겠다 며 곽 교수는 “강추!”했다. 자기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발휘하길곽 교수는 이화의 미래교육이 나아갈 바를 ‘인간미’에서 찾았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차별점이자 강점은 결국 ‘가장 사람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마음, 정신, 가치의 영역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저는 이화가 갖고 있는 저력은 대강당 채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대강당 채플을 통해 공동체를 의식하고 신을 의식하게 되죠.” 스피노자의 말처럼 “신을 의식하면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면면을 살피는 것”이다. 그것은 섬세한 시선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사를 느끼는 미적 체험으로 이어진다. “어느 대학도 할 수 없는 이화만의 이런 가치를 바탕으로 이화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평생교육의 허브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이화에서 우리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처음 12 1 2 다음 페이지 끝